겨울숲에서
안 도 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 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로 너무나 잘 알려진 안도현은 차디찬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시인이다. 열정이 식고 용도가 사라지면 버리기 바쁜 인간들에게 뜨거운 양심을 찾아내 주고 '사랑의 근본'은 '상대방에 대한 헌신'이라는 차원 높은 가르침으로 결코 때 묻지 않은, 맑은 시성을 표현하는 진정한 철학자, 교수, 모든 길 잃은 자들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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