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왜구'는 반역사적 언어, 우리 모두 역사적 진실앞에 서자
'토착왜구'는 반역사적 언어, 우리 모두 역사적 진실앞에 서자
  • 이대원 기자
  • 승인 2020.05.26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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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조부는 위정척사운동하다 돌아가시고 재종 백부는 명성황후 시해 을미의병하다 가족 모두 돌아가셨고 나의 증조부는 1904년 일본인이 다시 올때 싸우다 돌아가셨고 증백부님은 마지막까지 일본인과 싸우다 1930년대 돌아가셨다. 그곳도 고향이 아닌 강원도 까지 가셔서 6.25전쟁이 발생하니 나의 고모는 밥좀 달라고하다 가족 전부가 몰살 당할 뻔 하였고 나의 숙부는 빨갱이가 싫어 맞서다 결혼도 못하고 이름없이 돌아가셨다.

나의 가족중 또 한분은 빨갱이 놈들 때문에 결혼하자마자 아기 배속에 두고 빨갱이와 싸우다 전사하여 18세에 과부가 된 분도 있다.

6.25 전쟁 이후에는 질병이 돌아 나의 할머니가 약 처방이 잘못되어 돌아가셨고 또 먹을 것이 없어 안동 길안 현서 시장에 갔다 국군 트럭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오다 산넘어에서 군용 차가 굴러 또 나의 가족이 돌아가셨고 그 결과 젖을 못먹어 나의 형이 또 아기일때 돌아갔다.

물론 또 있다. 우리 할배는 그래서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귀하게 사셨고 우리 아버지는 간혹 술만 드시면 일본 노래가 나온다. 왜 그러냐고 하시면 일본놈들이 학교에서 일본말 못하는 학생은 추운 겨울날 그렇게 차가운 얼음 물로 무섭게 사람을 개짐승처럼 취급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픈 귀가 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일본인들이 모든 지역을 다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처 증조모 94살이신데 물어니 울진지역에서는 순찰을 자주 돌았고 어릴때 칼찬 순경이 무섭기도 하였지만 걸어다닐때는 멋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나의 4대조 고모부 집안은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고도 해방 후 북에 한번 갔다온 이후로 빨갱이 소리 듣고 살고 아버지는 가창골 학살 사건으로 희생되어 그렇게 사셨다고 5년전 쯤 알게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항상 어릴때 이야기하는 60년 잃어버린 가족으로 살았다.

또 있는데 말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 그 정부가 독재정권이던 민주정부이던 하루라도 살아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집의 목표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조용히 침묵속에 살다 다시 생겨난 빨갱이 정부를 보면서 아니 죽도록 항일독립운동하다 그렇게 죽었는데 누구처럼 공훈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경상도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는 정권의 댓글 부대를 보면서, 또 오늘 이용수 할머님의 기자 회견에 또 친일이나 미래통합당이 뒤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조사를 보고 결정하자는 것에 분노를 감출 수가 없다.

토착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 이전에 역사적 진실이 먼저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장 국민앞에 사죄하고 미래통합당에게 씌운 프레임을 힘으로 보이지않은 권력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역사와 국민에게 거듭 사죄하고 야당의 요구에 적극 응해야한다.

윤미향 사퇴와 정의연의 해체를 통한 분리로 위안부의 올바른 교육이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국민 행동 실천인 글을 짓다.

 

*토착왜구(土着倭寇): 과거 한국에서의 친일파를 뜻하는 사어였다가 최근 정치적 목적으로 다시 활용된 표현이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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