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벌지기 고행, 길고도 위험한 여로
봄 벌지기 고행, 길고도 위험한 여로
  • 김승윤기자
  • 승인 2024.03.04 13: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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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봄의 여로

 

유네스코 한국회관에 한국 최초 옥상생태정원 조성유기농 자격증 취득조경학 박사 농부김승윤 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총장보

유네스코 한국회관에 한국 최초 옥상생태정원 조성유기농 자격증 취득

조경학 박사 농부김승윤 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총장보

 

벌들이 봄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험로이다.

작년 12월 월동에 들어간 벌들은 29통이었다. 30통으로 맞추려 했지만 벌이 약하여 할 수 없이 하나를 합봉하고 나니 그런 숫자가 되었다. 그렇게 한겨울을 나고 입춘이 지난 2월 7일 봄벌을 깨웠다. 이 때 동사한 2통을 버리고 너무 약한 벌 2통을 합치니 25통이 되었다. 벌들이 전반적으로 약했지만 혹한을 이겨냈으니 생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월동벌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는 동료 양봉가들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자부하며.

그리고 우수에 봄비가 오고 며칠 뒤 춘설이 내렸다. 위험한 습설이었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사르르 녹는 봄눈에 조급한 벌지기는 벌써 봄이 왔다는 환상에 젖었다. 그런데 봄벌 깨우고 삼칠일이 지나 벌통을 열어보니 결과가 처참했다. 그동안에 동사한 벌, 여왕벌이 사라진 벌, 한줌 밖에 안 남은 벌이 너무 많다. 전쟁 피해를 수습하듯 벌들을 다시 정비하고 보니 18통 남았다. 조금 더 줄어들면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말씀하신 이순신 장군의 처지가 될 지경이다. 오월 아까시꽃 유밀기 때 꿀 따러 나설 채밀군 숫자가 12통이 된다면 그나마 황송할 일이지만.

벌들은 약하고 봄으로 가는 길은 아직 험난하다. 얼마나 남아서 영광스런 채밀 비행을 할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러한 결과가 되었을까. 벌통 숫자에 연연하여 약한 벌들을 더 과감하게 합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지키기 어려운 유혹이다. 벌통 둘을 하나로 합치면 두 마리의 여왕벌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비정하다. 나중에 벌들이 세력이 좋아지면 두통 세통으로 분봉을 할 수는 있지만, 새로 여왕벌을 육성하여 안착시키는 일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봄벌을 기를 때 어느 정도의 세력으로 몇 군의 벌들을 유지시킬지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순간의 판단이 일 년 농사를 좌우한다.

어제부터 엄혹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양봉장에 가보니 그동안 녹았던 땅은 다시 얼어붙었고 바람까지 심하게 분다. 한겨울에도 하지 않았던 보온덮개를 소문 아래까지 푹 덮어주고 왔다. 월동벌과 봄벌은 그 존재적 위상이 다르다. 월동벌은 서로 뭉쳐서 추위에 견디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것도 쉽지는 않다. 그런데 봄벌은 이미 육아를 시작했다. 이들은 새끼를 기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새끼들을 함께 돌봐야 한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일도 복잡하다. 개별적인 생존만이 아니라 가족과 국가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외부 환경의 변덕스러움은 더 더욱 치명적이다.

완전히 따뜻하고 푸근한 봄날은 4월 4일 청명 즈음에야 온다. 그때를 농가월령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삼월(음력)은 모춘이라 청명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이제 한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어떠한 드라마가 연출 될 지 알 수 없다. 입춘부터 잡아도 청명까지 두 달이다. 그것을 두고 봄의 여로라는 말을 쓰자니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시간이란 당사자에게는 한 없이 늘어나는 것이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벌을 기르게 되니 4계절이 24절기로 늘어났다. 특히 채밀군을 준비하는 봄은 벌지기들에게 길고 긴 세월이다. 길고도 위험한 여로이다.

 

생명의 신비, 봄에 만나는 생강나무 잎눈과 꽃눈

오늘 양봉장에 나가보니 맹추위 속에 작은 깃털 같은 진눈개비가 날리고 있었지만 울타리의 개나리가 한 두 촉 피었고 주변 야산 생강나무의 꽃눈도 조금씩 터지고 있다. 위험한 길에도 즐거움이 있는가.

 

산수유와 비슷하게 초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가 생각나서 가까운 숲에 갔더니 생강나무가 분명한 나무 가지에 두 가지 눈이 나 있다. 가지 끝에 난 뾰족한 눈은 잎눈 같고, 중간의 동그란 눈은 꽃눈 같다. 그냥 돌아서려다 이 눈들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증이 일어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눈을 열어보기로 했다.

 

먼저 잎눈의 겉껍질을 여니 하얗고 폭신한 모피 같은 것이 보인다. 버들강아지 같다. 모피를 여니 놀랍게도 그 안쪽은 작고 푸른 잎이다. 마치 하얀 토끼 귀 같다. 밖은 흰털, 안쪽은 피부. 생강나무 잎은 이렇게 고급스러운 모피를 두르고 추위를 견디면서 나오는구나. 숲에 가면 지천인 나뭇잎들이 모두 이럴 것이다. 사람만 귀한 것이 아니네.

 

다음에 꽃눈을 여니 연두색의 보석이 부서진 듯하다. 연두색이 엷어져 노란 꽃이 되는가 보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 나무타령이 생각난다. 가자가자 감나무 오자오자 옻나무...너랑 나랑 살구나무... “ 생각난다 생강나무”도 있었던가. “괴롭구나 고로쇠나무”는 요즈음 수액채취 때문에 진짜로 괴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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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4-03-12 14:24:53
고생이 많으시네요!
늘 위로와 격려, 함께 합니다
삶이 늘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이것이 배움이 되어 나중에 더 좋은 기쁨으로 다가오겠죠!

농사는 모두 음력 절기가 중요한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