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기념관 소고
김영삼 기념관 소고
  • 글로벌환경신문
  • 승인 2023.09.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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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영웅 기념관명에 이니셜 쓰지 마라

 

올해는 문민정부 30주년 기념 해이다. 금융실명제와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등 경제 선진국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민주화 영웅'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김영삼)을 회고해 본다. 

 

거제도 김영삼 생가 흉상
거제도 김영삼 생가 흉상

김영삼은 하드웨어인 이승만(건국)과 박정희(경제발전)에 이어 경제, 정치,행정 등을 총망라해 경제 선진국으로 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소프트웨어를 구축한 분이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로 부정부패 척결, 지방자치제와 선거공영제 실시, 군부 영구 종식 하나회 척결, IT 강국 기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초고속철도  KTX 착공, 세계 1위 인천공항 착공, 남녀평등 기초 여성발전기본법 제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그의 업적은 많다. 김영삼 재임 시절 시작한 많은 국책 사업은 후임 대통령 때 완성된 것이 많아 이것을 후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잘못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외환위기(일명 아이엠에프)도 당시 세계 경제가 금융 조정기를 거치게 되자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이 그 영향을 받았다. 김영삼은 기민하게 대처하여 IMF(국제통화기금)와 협상 끝에 외환위기를 초기에 마무리하였다(1차 협상).

비교적 적은 돈으로 마무리가 잘 된 김영삼의 1차 협상을 합리적 이유도 없이 무조건 거부를 선언하여 1차 협상을 무위로 만든 후임 대통령에 의해 우리나라는 헤어나기도 어려운 경제위기로 내몰렸다. 2차 협상은 더디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1차 협상 때보다 더 많은 부채를 국가가 책임지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게 되는 최악의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의 공은 2차 협상으로 마무리 지은 후임 대통령에게 돌아갔고 과는 재임 당시 외환위기가 시작되었다고 하여 김영삼을 무능 대통령으로 오인시켰다.

그러나 최근 각종 외환위기의 원인과 책임 규명에 대한 재판으로 외환위기 전 과정에 대한 실상이 드러남에 따라 김영삼은 명예 회복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김영삼은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부산 신항 건설, 수영정보단지(센텀시티) 조성 수영비행장 이전, 거가대교 건설, 부산시민공원 조성 하야리야 부대 이전, 아시안게임 유치, 다대항 배후도로, 광안대교, 지하철 3,4호선, 영화의 전당과 벡스코 건립, 삼성 자동차 유치 등등이다.  

김영삼의 애국심은 남달랐다. 김영삼은 우리 역사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몸소 실천한 분으로 살아생전 자신의 사재까지 모두 기부하고 사망 후 살던 집마저 기부했다. 이렇게까지 청렴한 대통령은 우리 헌정사에서 김영삼이 유일하다.

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YS민주역사기념관>이란 명칭으로 부산민주공원에 건립될 계획이다. YS가 누군지 모르는 외국인이나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김영삼기념관>으로 명칭을 다시 바꾸어야 한다. 이니셜로 기념관 만든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개의 기념관은 도심에 접근성이 좋은데 위치한다. 접근성이 나쁜 부산민주공원으로 건립 장소가 결정되었다고 하여 아쉬움이 크다. 북항 랜드마크 부지에 건립하고 정원을 조성하여 국민 누구나 그 정신을 기리고 본받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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