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에 사고전환, 커피박 퇴비 도전
경칩에 사고전환, 커피박 퇴비 도전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1.03.05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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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향 나는 거름

 

 

철학하는 농부 김승윤박사
 

 

 

경칩(3월 5일)은 봄벌을 깨운 지도 3주이고, 텃밭 농사도 준비할 때다. 텃밭을 몇 해 일구면서 생긴 절박한 과제 중 하나가 친환경 퇴비 만들기이다. 올해는 진짜 만들어 보리라.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밭에 퇴비를 내고 있는데, 대부분 일반 가축분(소, 돼지, 닭의 배설물) 퇴비이다. 일반 가축분 퇴비는 대개 충분히 부숙되지 않았고 잔류 항생물질도 많아 문제라고 한다. 초짜 도시농부도 직접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진짜 친환경적인 퇴비는 없을까? 이것저것 궁리하다 커피찌꺼기 퇴비가 그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커피찌꺼기라는 말이 너무 길어 커피박(粕)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하자. 깻묵처럼 커피묵이라고 나 혼자 강변할 수도 없고 말이다.

요즈음 한국은 세계 3대 커피 소비국이다. 아파트 상가에도 카페가 수두룩하고 좀 산다는 집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들여놓으니 그럴 만도 하다. 2018년 기준 연간 15만톤의 원두를 수입하는데, 0.2%의 커피를 뽑고 99.8%는 찌꺼기로 버린다. 커피박은 일반쓰레기로 분류되어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데 양분이 많아서 매립하면 토양이 산성화되고 기후변화의 원인인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탈취제 등 커피찌꺼기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양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퇴비 만들기이다. 커피박으로 퇴비를 만들면 좋은 점이 정말 많다.

 

 

커피거름의 좋은 점ㅡ영양공급, 해충퇴치
커피거름의 좋은 점ㅡ영양공급, 해충퇴치

 

 

당도높은 커피퇴비

커피박에는 거름의 주성분인 질소와 인이 많고 탄소질소비율(탄질율)이 20:1이어서 거름 만들기에 적합하다. 또한 발효시키기에 딱 좋게 촉촉한 상태(수분함량 약60%)로 버려진다. 이놈을 잘만 발효시키면 되는데, 미생물의 도움이 필요하다. 유튜브를 검색하여 연구해보니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퇴비제조용 미생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커피퇴비는 발효 후에도 깨끗하고 약간의 커피향이 남아 있어서 냄새나고 불결한 거름의 이미지와 딴판이라 고급스럽기 그지없다. 발효된 커피퇴비는 효과도 탁월하여 다른 퇴비를 투입했을 때보다 발육도 좋고 딸기 같은 열매채소는 당도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일반 가축분퇴비의 6분의 1분량만 사용하면 충분(텃밭 5평에 가축분퇴비 20kg 사용, 커피퇴비는 3kg 사용)하다. 남아 있는 향기로 해충 퇴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큰맘 먹고 동네 카페에 가서 문의하니 커피박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마침 잔뜩 모아둔 커피박 50여kg을 환영받으며 공짜로 가져와 작업을 시작했다.

 

 

 

퇴비제조용 미생물은 인터넷으로 두 종류를 사서 실험에 들어간다. 배합비율은 50대1정도. 크기가 다른 3가지 그릇에 넣어 실험 중이다. 발효기간은 1~3개월. 진작 알고 있는 것이지만 직접 해봐야 내 것이 된다. 해봐야 어려움도 알고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도시 텃밭지기들이 돈도 안 들이면서 양질의 퇴비를 확보하고 자원순환과 기후변화대응에도 공헌하는 신박한 방법으로 보인다.

 

 
 

고급거름인 커피향 퇴비, 대만족이다 

 

 

농부의 봄

봄꽃이 피고 새싹이 나면 도시 농부도 바빠진다. 벌을 깨워 물공급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벌들은 새로 알을 낳아 육아를 하는 중이다. 내부 온도를 측정하는 온도계를 설치했더니 적정 육아온도인 35도가 표시된다. 이맘때는 겨울철보다 더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 따뜻한 벌통 안에서 사람이 주는 화분떡과 물을 먹고 새 벌들이 자란다. 이달 중순경이면 새 벌들이 출방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겨우내 생존했던 벌들은 첫 번째 육아 의무를 마치고 노병처럼 사라질 것이다. 일벌들이 알에서 성체로 출방할 때까지 21일이 걸린다. 아직은 약하지만 한두 번 더 태어나면 봄 벌들은 엄청난 기세로 성장할 것이다. 벌지기들은 바빠진다.

작년 늦가을에 심어 둔 마늘과 양파는 비닐로 보온을 했었다. 비닐을 열어젖히니 이렇게나 자랐다. 이제 중부지방의 기온도 거의 영상이니 햇볕과 바람을 직접 맞으며 커야 한다. 월동작물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새로운 즐거움이자 걱정거리다.

그동안의 경험은 말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때에 하면 된다. 그러나 하늘이 하는 일까지 걱정할 필요도 소용도 없다. 바쁘지만 여유롭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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