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꽃밭의 여왕, 거꾸로 자라는 백합!
나를 울린 꽃밭의 여왕, 거꾸로 자라는 백합!
  • 꽃소리
  • 승인 2020.05.10 20: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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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합

 

 

                                                                                                 꽃소리(정원디자이너)*

 

꽃을 키우며 눈물을 흘린 적이 가끔 있었는데, 정작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경우보다는 꽃에게 저지른 나의 실수 때문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봄이 지나고 계절이 초여름으로 접어들어 꽃밭 한가운데 진초록 백합 꽃대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작은 사건 하나가 있다.

 

꽃피기 전 백합
꽃피기 전 백합

 

 

못 찾은 구근

어느 해 봄 백합을 심으려고 약간의 구근을 준비했었지만 백합 심을 자리에 문제가 생겨 그 구근들을 다른 곳에 임시로 심어 두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꽃밭이 다 정리되어 심어 두었던 구근을 파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심었던 개수보다 한 개가 부족했다. 파고 또 파고 부근을 다 헤집어도 그 구근 한 개는 찾을 수가 없어 아쉽지만 포기하고 말았었다. 제대로 자리 잡은 구근들이 싹을 올려 한 10cm 쯤 자랐을 때였었지 아마, 임시로 백합을 심었던 그 자리에 다른 꽃을 심으려고 땅을 고르던 친구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뛰어 가보니 그때 찾지 못했던 백합 구근 한 개였다.

 

아! 생명이, 거꾸로 자라네

그런데 그 백합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백합이 땅속에 거꾸로 박혀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그 구근 찾느라 이리저리 땅을 파헤칠 때 흙 속에서 한 바퀴 굴러 거꾸로 땅에 묻혀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뒤집힌 채 땅 속으로 줄기를 한 뼘이나 뻗으며 솟아오르려고 발버둥친 것 같았다. 원예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내겐 발버둥친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친구는 “ 야, 백합이 생각보다 강하네!” 연신 감탄하는데 나는 왜 느닷없이 목이 메이는지!  나도 그 강인함에 감탄하거나, 그때 제대로 찾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거나 뭐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말을 하면 분명 떨리는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 캐낸 백합 들고 서둘러 돌아섰지만 눈물이 났다. 초록 잎사귀 꼿꼿한 백합들 곁에 그 힘없는 잎사귀 세워가며 꾹꾹 눌러 심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생명력 넘치는 백합 구근

 

 

꽃밭의 여왕, 그 자태! 그 향기!

난 백합을 내 꽃밭의 여왕이라 부른다. 백합의 아름다움은 완벽 그 자체다. 적당한 키, 살포시 고개 숙인 순백 꽃송이들의 의외의 그 당당함, 그리고 그 향. 초여름 저녁 만발한 백합 향에 이끌려 꽃밭에 내려 서 본 적이 없다면 꽃향기에 대해 말하지 말라. 일 년 중 가장 많은 꽃이 피는 초여름, 오색찬란한 꽃밭 한 가운데 새하얀 왕관을 쓴 한 무리 백합이 그 치명적이 향으로 꽃밭을 아우를 때, 그 때가 내 꽃밭의 전성기다. 그 사건 후 내 꽃밭의 여왕은 완벽한 아름다움에 강인함까지.

 

독보적 아름다움
우아한 자태

 

그 후 많은 날들이 흘렀다. 그 친구와 가끔 백합 얘기를 할 때면 우린 여전히 백합의 그 강인함을 되새기곤 한다. 하지만 그 친구는 모른다. 내가 그 때 울었다는 걸(산청 별총총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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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0-05-11 12:23:05
꽃소리씨는 교육자이자 귀농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