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여상(視民如傷)” 후보에게 투표하라
“시민여상(視民如傷)” 후보에게 투표하라
  • 이대원 기자
  • 승인 2020.04.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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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기자/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부산본부 사무국장
이대원 기자

 

 

                                                                           

4.15 총선이 내일로 다가왔다. 여야후보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위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의 주인인 유권자의 마음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오늘도 여야후보들은 한 표라도 얻고자 “ 누구의 탓” 을 하며, 유권자를 위한 믿을 수 있는 후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모두 믿을 수 있는 후보라고 하니 유권자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2013년 허버트 A. 사이먼상(Herbert A. Simon Book Award)을 수상한 바 있는 배리 보즈먼(Barry Bozeman) 교수의 경제적 개인주의를 통한 공공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개인주의적 공공가치를  “개인이 자기이익을 아낌없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가 모든 필요와 바램을 잘 구현하는 사회” 속에서 찾았다.  

그러나 코로나 19 사태는 개인의 자기 이익추구를 사라지게 하였고, 유권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실언에 가까운 말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경우를 아서 F. 벤틀러(Arthur F. Bentley, 1908:167)는 “유령개념 (an idea ghost)" 이라고 한다. 이것은 실수에 따른 어려움을 회피하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을 묘사한 말이다. 최근 유권자의 가정에 행복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정부, 여야후보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왜적이나 오랑캐가 침입한 것도 아니다. 이런 원인제공에는 정부 초기 코로나 19 대응정책도 있었다.

“국민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말” 은 사라지고 있지만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리 정치에 늘 자리잡고 있는 말로 대신한다. 바로 “시민여상(視民如傷)”이다. 18세기 영·정조 시대 학문이 조선 최고봉에 올라 퇴계학을 다시 꽃 피운 소퇴계 대산 이상정(李象靖,1711~1981)은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대하듯이 한다는 뜻” 으로  맹자가 문왕(文王)을 찬양하며 한 말인 “시민여상(視民如傷)”을 자주 언급하였다.

첫 제자 맹휴(孟休) 이현정(李顯靖, 1721~1789)에게 이상정이 남긴 시는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세기 조선의 급변하는 변혁기인 영·정조 시대 몰락한 경상도 지방(현재의 부산광역시 및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전체를 총칭)의 남인세력에게 희망을 주고 학식으로 조선의 최고봉에 올라 사라져가던 퇴계학을 다시 꽃 피워 별칭이 소퇴계였던 대산 이상정(李象靖,1711~1981), 그는 지금의 정부같은 부서에서 공공부문의 일을 다루기 위해 나아가는 첫 제자 맹휴(孟休) 이현정(李顯靖, 1721~1789)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대산문집에 남겼다.

 

 

괴원(승문원(承文院)의 별칭)에 부임하는 아우 맹휴*를 전송하며

 

일신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 一身非我有

천리 길 임금 위해 달려가네 / 千里許君馳

하늘가엔 엷은 구름 덮이었고 / 天際輕陰合

바람결엔 놀란 물결 위태하네 / 風頭駭浪危

부처 은혜 반드시 세상서 갚고 / 佛恩須刹報

이웃 쟁기질 어찌 우리 나서랴** / 鄰耒詎家持

더없이 사랑함은 매화나무이니 / 絶愛寒梅樹

그윽한 그 향기 홀로 알겠거니 / 幽香獨自知

제5, 6구는 주자의 〈진동보에게 답함〔答陳同父書〕〉의 뜻을 차용한 것이다.

경인년(1770, 영조46) 〔送孟休弟赴直槐院 庚寅〕

 

 

따라서 다가오는 4.15총선은 공익적 가치를 일부 존중하지만 이상정이 자주 언급한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대하듯, 극진히 보살펴야 한다는 뜻으로 맹자가 문왕(文王)을 찬양하며 한 말인  “시민여상(視民如傷)” 의 실천적 도덕규범을 갖춘 후보자에게 국민 주권자인 개인 각자가 가진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투표하여 희망의 노래를 다시 써보는 것이 급변하는 시대의 혁명이 아닐까 추정된다.

 

 

<인용 주해>

 

*맹휴(孟休) :

대산의 재종제이자 문인인 이현정(李顯靖, 1721~1789)의 자이다. 1763년(영조39)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高山及門錄 卷2》 《定齋集 卷27 通訓大夫弘文館校理約窩李公墓碣銘, 韓國文集叢刊 298輯》

 

** 부처 …… 나서랴 :

《주자대전》 권36 〈진동보에게 답함〔答陳同父書〕〉에서 주희는, 때를 만나지 못하였을 때에는 몸을 선하게 유지하며 대의를 밝히는 것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니 반드시 벼슬에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불자의 말에 ‘이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받든다면 이것을 바로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두보(杜甫)도 ‘사방 이웃이 쟁기와 보습 챙겨 나오니, 어찌 굳이 우리 집에서 들고 나서랴.〔四隣耒耜出 何必吾家操〕’라고 하였다.” 맹휴에게 줌 신축년(1781, 정조5) 〔與孟休 辛丑〕

 

시민여상(視民如傷) :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대하듯 하라는 뜻으로 맹자가 문왕(文王)을 찬양하며 한 말인데,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정호(程顥)가 지방관이 되었을 때마다 이 4자를 거처에 써서 붙이는 등 후세에는 지방관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기본자세로 여겨졌다. 《孟子 離婁下》 《近思錄 卷10 政事》  

 

출처번역) 한국고전번역원 이정원 (역, 2012, 2015) 일부 재인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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