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 칸나를 잃어버린 아픔
맏형 칸나를 잃어버린 아픔
  • 꽃소리 기자
  • 승인 2021.08.10 22: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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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나

 

                                                                                                                 꽃소리(정원디자이너)*

 

 

난 좁디좁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지역마다 기후조건이 다양할 줄은 본격적으로 꽃을 키워보기 전에는 몰랐다. 기후에 대해 일반 상식 수준으로 대도시에서만 살았으니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같은 도 지역 내에서도 군마다 기후가 다르다는 걸.

 

함 살아 보세요

내 고향은 따뜻한 남쪽 해안 도시.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골은 같은 남도지만 내륙으로 쑥 들어 온 곳. 그래봐야 차로 한 시간 남짓. 그러나 그 한 시간의 거리가 이리도 나를 힘들게 할 줄이야! 이곳으로 이사하고 꽃밭을 다듬던 그 해 가을, 우리 마을에서 앞뜰에 꽃을 좀 키우는 집 아주머니와 꽃 이야기를 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게 되었다. 수국, 꽃 치자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좀 버틴다 해도 꽃이 잘 피지 않는다거나 어느 겨울 강추위에 돌연사해 버리기 일쑤. 어디 그 뿐인가 동백과 천리향도 힘들단다. “아니 여긴 따뜻한 남도가 아닌가요?” 놀랐더니, “ㅋㅋ살아보세요.” 아, 수국과 꽃 치자는 화분으로 수년 키우며, 언젠가 내 꽃밭 땅에 자유롭게 내려놓을 그 날만 기다려 왔는데…

 

내려놓지 못해 노심초사

그랬다. 여긴 이름만 남도였다. 초봄, 늦가을은 새벽과 한 낮의 기온차가 심한 날은 20도 가까이 났다. 한 겨울 밤엔 영하 7~8도는 기본. 년 중 절반 정도는 하루 중에도 몇 계절이 들락거렸다. 꽃들도 헛갈리는지 싹을 올렸다가 얼어 죽기를 반복했고. 첫 해 봄에 꽃 치자와 천리향을 양지바른 창 밑에 심어 놓고 겨울엔 나무 울타리를 치고 볏짚과 비닐로 방한 장치를 만드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수국은 위험부담이 커 화분에서 내려놓지 못했고 동백은 버티긴 하는데 꽃은 4월에 핀다. 겨울 꽃 동백을 벚꽃 피는 4월에 보다니! 그래도 얘들은 살아남긴 했다. 그 첫 해 겨울 난 칸나를 모두 잃었었다.

 

 

멋진 잎이 일품인 칸나, 여름 꽃밭의 화려함을 더한다  

 

 

강하다고 믿었던 칸나, 너마저

칸나는 내 꽃밭 꽃들의 맏형 같은 존재다. 2m 가까이 올라가는 큰 키에 넓적하고 풍성한 잎들로 울타리를 쳐, 바람으로부터 여린 꽃들을 보호해 준다. 큰 키라면 접시꽃과 해바라기도 있지만 강한 바람엔 제 몸도 속수무책. 꽃은 으레 여성을 연상시키지만 칸나엔 강한 남성의 이미지가 있다. 칸나는 그 큰 체격에 비해 꽃은 작고 향기도 없으며 모양도 수수하다. 그러나 그 잎은 아주 볼만한데, 한여름 시원스럽게 펼친 큼직한 잎들은 마치 먼 열대 식물인양 이채롭다. 그리고 그 대단한 번식력. 칸나는 가을까지 가공할만한 위력으로 세력을 뻗어 가는데 그 강한 번식력에 살짝 속아 내가 칸나를 오판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꽃잎에 못지않게 꽃대가 더 매혹적인 칸나

 

늦가을에 월동하지 못하는 꽃 뿌리들을 파내던 중 칸나 차례가 되어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렇게 까지 넓고 단단하게 퍼져있을 줄이야. 총 십여 무더기는 되었고 힘들게 모두 파낸다 해도 그 어마어마한 덩어리를 도대체 어디다 보관한단 말인가. 추위에 좀 약한 줄은 알았지만 여름, 가을 내내 보여준 그 강인함에 모험을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칸나 뿌리 둘레를 벽돌로 두어 단 성을 쌓아 그 위에 흙을 덮고 또 그 위에 볏짚을 잔뜩 올려놓곤 손을 털며, ‘그래도 여긴 따뜻한 남도니깐.’

그러나 아니었다. 정말 이름만 남도. 에고, 그 겨울 내 칸나 몽땅 잃었다(예안 꽃마실에서).

 

무리지어 핀 칸나는 단연 여름꽃밭의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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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1-08-10 22:07:51
꽃소리씨는 교육자이자 귀농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