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비극, 개구리가 살지 않는 논
환경비극, 개구리가 살지 않는 논
  • 꽃소리 기자
  • 승인 2021.06.12 04: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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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익히 보아 온 것 들 중 어쩌다 한 번 씩 볼 때와 일상 속에서 볼 때 느낌이 달라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논이 그렇다. 지금껏 내게 있어 대표적인 논은 문학 작품 속에 흔히 등장하는,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들로 충만한 그런 논이었다. 그러나 논 옆에 살아보니 정말 논다운 논은 찰박찰박 물을 대어 모내기를 끝냈을 때의 그 논이 아닌가 싶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그 뒤로도 한참동안 오며가며 텅 빈 논들 그저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어느 날 불현듯 갑자기 그 많은 논들에 찰랑찰랑 물이 가득했다. ‘모내기철이구나.’ 당연한 상식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그 논물을 본 순간 내 느낌은 ‘와우, 이 풍경은 뭐지?’ 전혀 예기치 못한 기습을 받은 듯 얼얼했다. 내내 비어있던 땅에 단지 물이 들어찼을 뿐인데, 칸칸이 가득 담긴 그 논물이 미풍에 살살 일렁일 땐 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햇살 속에선 한없이 평온했다가도 어스름 저녁 산그늘이 깔리면 거사를 앞두고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엄숙했다. 내 논도 아니건만 모내기 전 며칠 동안 틈만 나면 논물 보러 들락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 물 댄 논들은 파릇파릇 어린모를 품는다.

 

햇살아래 논물이 빛나면, 그 장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질서정연하게 모포기를 품은 논은 그 전과는 또 다른 풍경이다. 엄격한 듯 정갈하고, 한없이 자애롭고 평화스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엄마의 모습 같다. 그렇다면 어린모가 다 자란 빽빽한 초록 논이나 수확을 앞 둔 황금 논과는 다른 이 느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어린모가 자라서 벼가 될 쯤부턴 더 이상 논바닥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논은 온통 벼다. 그러나 막 모내기한 논은 어린모, 가득한 논물, 그 논물을 담을 수 있는 땅의 존재까지 함께 어우러져 강한 생명력을 자아내는 것 같다.

 

어린모가 만드는 대자연의 미
어린모가 만드는 대자연의 미

 

이렇듯 물은 어떤 풍경 속에서건 결정적 한 수 같다. 굽이굽이 산길 돌 때 아담한 저수지 하나 볼 수 없다면 좀 심심하고, 울창한 숲 속에 들어간들 흐르는 계곡 품지 않았다면 허전하리라. 이 화룡점정 같은 물을 내 꽃밭에도 들이기로 했다. 뭐 거창한 공사 수준의 연못은 아니고 커다란 고무 통 하나 땅을 파고 묻은 게 전부. 그래도 그 속에 넣을 건 다 넣었다. 수련화분 3개, 부들화분 2개, 물 위엔 부레옥잠. 화룡점정 분위기까진 아니어도 꽃밭에 훨씬 생기는 도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고무 통 연못에 “개골개골” 개구리가 제 집인 양 폴짝거렸다. 그냥 잠깐씩 놀다 가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물속을 보니 어느새 올챙이들까지. 처음엔 수련 잎에 앉아 있다가 내가 다가가면 풍덩 물속으로 잠수 타던 녀석이 하루 이틀 지나니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미동도 않았다. ‘흠, 고무 통 연못에 완전 적응했나보네.’ 그런데 왜 지척의 쾌적한 논을 두고 굳이 이 좁은 고무 통에서 살까? 여기라고 천적의 위협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논엔 전에 보았던 만큼 올챙이도 없는 것 같고 개구리 울음소리도 예전 같잖다.

<지금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제발 이런 다큐멘터리는 보게 되지 않기를!(예안 꽃마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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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1-06-12 04:42:49
꽃소리씨는 산청 별총총마을을 떠나 안동 예안 꽃마실로 최근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