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가위질 미안, 능소화 꽃피기까지
앗! 가위질 미안, 능소화 꽃피기까지
  • 꽃소리 기자
  • 승인 2020.07.08 01: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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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

 

       꽃소리(정원디자이너)※

 

 

꽃을 굳이 동서양으로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동양, 특히 우리 풍경 속이 제격인 꽃이 몇몇 있다. 시골집 텃밭 귀퉁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봉숭아가 그렇고, 그 밑의 채송화, 장독대 언저리 분꽃, 그리고 담장을 타고 있는 능소화가 그렇다.

 

하늘로 향한 간절한 염원, 능소화

 

봄이 되면 부드럽고 순한 줄기를 뻗어 빠르면 초여름부터 꽃을 피우는 능소화 꽃빛은 잘 익은 진주홍 감빛이다. 한여름 시골집 담장 위를 흐드러지게 뒤 덥고 있는 능소화 앞에, 가던 길 잠시 멈추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기와집, 초가집, 정교한 돌담, 엉성한 흙담, 정말 어디에 피어있든 운치 있는 능소화가 우리 집에도 있다. 아니 이사 오기 전부터 있었다. 그것도 꽤 오래된 듯 밑둥치가 흐뭇하게 굵직한 그런 능소화가.

 

 

 

첫 해 꽃밭을 정리할 때 능소화에 유난을 떨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진주홍 꽃송이들을 상상하며 풀 뽑고, 물주고, 덩굴 정리해 주고. 그러나 7월이 가도 8월이 와도 꽃은 피지 않았다.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그 다음해에도 꽃은 피지 않았다. 책 인터넷 그 어디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어 슬슬 지쳐가던 3년 째 되던 여름 장마가 끝날 즈음, 아취 터널 저 높은 구석에 불그레한 무언가가 있는 듯. 당장 사다리를 놓고 가까이 다가가니, 아! 그건 능소화 서너 송이였다. 한 송이는 완전히 피어 진주홍 트럼펫을 불고 있었고, 나머지도 곧 터질듯 볼록 불룩했다.

‘나도 되는구나, 능소화가 되는구나!’ 뛰는 가슴으로 꽃송이를 살살 쓰다듬어보고, 흠흠 냄새도 맡아보고, 사다리 위에서 쉬 내려오지 못하고 야단법석을 떨던 중, 문득 꽃송이가 달린 위치를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꽃송이는 덩굴 줄기 끝에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여기 저기 사다리를 옮겨 놓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덩굴 줄기 끝에도 아주 작은 꽃봉오리들이 달려있었다. ‘줄기 끝’ 그건 3년 만에 꽃을 발견한 그 순간보다 내겐 더 큰 충격이었다.

이사 온 첫날부터 꽃을 발견한 그날까지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했던 일이 웃자란 가지 정리한답시고 능소화 덩굴줄기 끝을 잘라주는 것이었다. 꽃은 피지 않은 게 아니고 필 수가 없었던 것. 얼마나 답답했을까? 꽃 좀 피워 볼라치면 가위를 들고 나와 댕강댕강 잘라대었으니. ‘제발! 날 내버려 두세요. 그래야 꽃을 볼 수 있어요.’ 능소화는 3년 동안 절규했을 것이다.

꽃핑크 우단동자꽃,  능소화와 잘 어울려
꽃핑크 우단동자꽃, 능소화와 잘 어울려

 

그 여름 이후 능소화는 아취 터널 아래로 대롱대롱 꽃들을 늘어뜨리며 날 안심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난 다른 꽃들에게도 거의 가위질을 하지 않는다. 시든 꽃송이만 떼어줄 뿐. 그래서 내 꽃밭은 좀 복잡하다. 아주 잘 정돈된 꽃밭과 좀 복잡한 꽃밭, 꽃이 어디에서 더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좀 복잡한 꽃밭이 더 편안해졌다(산청 별 총총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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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0-07-09 07:53:35
꽃소리씨는 교육자이자 귀농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