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강 발원지 찾아 나서다
수영강 발원지 찾아 나서다
  • 글로벌환경신문
  • 승인 2020.04.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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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순 수영강생태환경네트워크대표
진지하고 밝은 미소의 장석순 수영강생태환경네트워크 사무처장

 

 

 

                                                                      수영강의 노래

                                                                                                            

                                                                                                                장석순

 

 

용천산 뱀밭골 골짝물이 남서로 흘러

천성산 계곡물을 만나 어울렁 더울렁

임기천아, 여락천아 너희도 와라

너울너울 춤추며 수영강으로 가자

노포천, 작장천, 신천안골천,

하정천, 철마천아

우리 회동수원지에서 숨바꼭질 하자

회동수원지야 어울렁 더울렁

덩실덩실 너울대며 수영강으로 가자

회동천, 석대천, 온천천이 우리를 마중 나온다.

자, 자, 자 우리 모두 함성 지르며 달려가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 영지에 닿으면 조용,

조용히 숨 고르며 묵념하고 가자

임진왜란 서러움에 잠든 영령들 시끄럽다

소리치실라.

 

 

 

 

 

수영강 활동을 시작하면서 발원지가 궁금했다. 강은 산골짜기의 계곡물에서 발원하여 바다가 끝이 되는 과정을 겪는다. 바다는 도시와 인접하여 찾아가 보기가 쉽지만 강의 발원지를 찾아보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수영강의 발원지가 어느 산골짜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늘 보게 되는 그 물길을 따라 바다로 가는지 궁금함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첫째, 향토역사와 국가지리 정보가 있는 문헌을 찾아보는 것과 둘째, 발원지라 추정하는 곳의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현지인의 증언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우선, 문헌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필자가 수영강 활동을 시작한 곳이 지금의 금사공업지역과 석대산업단지가 있는 지점이었다. 그곳은 사천(絲川)이라고도 하고 실내거렁이나 신내(新川)라고도 하였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 ‘동래부지’(1740)에는 동래부의 동쪽 8리에는 신천리(新川里)가 있다‘고 하였다가 ‘동래부읍지’(1899)에는 신천리(新川里) 대신 사천리((絲川里)로 기록이 되어있어 159년 역사의 변천에 따라 지명이 바뀌었다. 또한 동래부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천’(東川)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옛 마을 주민들은 사천보다 실내거렁이라 칭하는 이가 많았다. 실내거렁은 회동수원지 아래서부터 석대로 가는 동천교(석대다리) 부근까지의 지명이었으며 동대가 있는 곳은 동대거렁이라고 하였다. 정리하면, 실내거렁, 신천은 모두 사천(絲川)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수영강이라 칭하고 있었다.

이 사천을 오늘날 수영강이라 하기 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강의 정의를 보면 넓고 길게 흐르는 큰 물줄기이고 옛 지명에는 강이 되면 하(河)가 붙여졌을 법 한데 천(川)이라고 이름한 곳에 더욱이 지금은 하폭이 예전보다 더 줄어든 상황에서 강이라 부르는 것이 지명으로 맞지 않다고 내낸 생각하다가 부산시 담당 공무원에게 물어보았다.

 

수영강의 유래

이곳 사천의 지점의 현재 이름이 수영강인데 이 지점은 옛날부터 ‘사천’이라 하였던 곳이며 하류로 더 흘러가면 반여천이 있고 석대천, 서천(온천천)이 합류하여 강을 이루게 되는데 왜? 모두 천의 이름대신 강 이름으로 붙여서 모두 수영강이라고 칭하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수영강의 본류 전체를 그냥 수영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수영강 하나로 통일하여 관리를 하다 보니 그렇게 부르는데 옛 명칭의 무슨 천, 하고 구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니 현행 법정명, 행정명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수영강의 전 줄기(본류)가 마을과 지역을 흘러 내려오면서 담아오고 있는 전설과 유래와 특징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낭만 없는 강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속으로 안타까왔다.

이제 다시 발원지 이야기로 돌아가자. 필자가 사천에서부터 수영강 환경활동을 시작하였기에 문헌에 기록된 사천에서부터 수영강의 발원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동래부지(1740)의 기록에는 ‘사천(絲川)의 발원은 둘인데 하나는 양산 원적산(圓寂山, 지금의 천성산)에서 시작되고 또 하나는 양산의 경계인 사배야현(沙背也峴, 사밧재, 지금의 노포에서 양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발원하여 해운포로 유입된다’고 하였다. 지금으로 보면 천성산 계곡물이 법기수원지와 법기천을 따라 수영강 본류와 합류를 하였고 사배야현은 양산 동면과 연결되는 고개인데 지금은 개경교가 있어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이 수영강 본류로 합류하고 있다.

동래군지(1937)에는 ‘동천(東川)은 그 발원이 구 기장(機張) 웅계(熊溪, 곰내)의 홍류곡(虹流谷, 지금의 철마 웅촌에 있는 홍류폭포)에서 시작되고, 또 하나는 양산 법계(法界)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오륜대 봉황산(鳳凰山) 북쪽 바위 절벽 아래를 굽이 돌아서 회동천을 이루고 사천(絲川), 반여천(盤如川)을 이루어서 수영 정과정 위쪽에서 서천(西川, 지금의 온천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흐른다. 그 길이가 30리나 된다’고 기록되었다. 이를 현재에 보면 홍류폭포는 철마천의 발원지이며 곰내(웅계)는 백운산 자락에 있어 웅골의 물이 두명으로 흘러 수영강의 본류를 시작하기도 하는 지점이었다.

문헌의 자료에서 수영강 발원지에 해당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 방법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발원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강의 발원지는 ‘하류에서 상류로 가는 물길의 가장 먼 곳에 있는 곳에서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솟아 나오는 곳’이라고 했고 또는 ‘발원지라고 하는 곳에서 오래 살았던 원주민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 당시(2013년), 수영강 발원지를 인터넷 으로 검색하면 원효산, 원적산, 사배야현이 나오고 동양골이 검색되었다. 이중 동양골이라는 명칭이 옛날 우리나라 식 지명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지명유래를 보면 몹시촌스러운 이름들인데 동양이라는 지명은 현대적인 표현이었다. 그래서 다시 향토역사서를 뒤지며 동양골, 또는 동양이라는 지명유래를 찾아 보았다.

정관면 향토역사문헌을 보면 두명리에 동양골이란 지명은 없고 도장골과 동자골 또는 동작골이 있었다. 도장골은 도장곡, 또는 도장광이라고도 했는데 백운산(520.2m)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좌광천의 상류로 흘러드는 소하천의 상류계곡이라 하였다.(신증 정관지2015.12.1, 기장군 정관면 향토역사2015.10) 이곳은 병사들이 훈련하던 골짜기 또는 병사들의 식량과 군비를 쌓아두던 고방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동자골은 동작골, 동장곡이라고도 하였으며 부팃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부팃골은 두명마을 남동쪽 진탄고개와 가까이 있는 골짜기로서 진탄의 병영을 다스리는 본부가 있던 곳에서부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두명마을 동쪽 골과 능선을 사이에 두고 맑은 냇물이 흐르고 골이 깊어 햇볕이 들지 않아 여름에도 서늘하며 부팃골 병영이 있을 때 시원한 음용수를 공급하고 음식을 저장하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신증 정관지 2015.12.1.)

문헌에도 없는 동양골이 어떻게 해서 현대에 전해지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방언에 의해 와전되어 변형이 된 것 같았다. 도장골, 동장골, 동자골, 동작골이라 부르다가 동양골로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현재에 동양골이 수영강의 발원지라고 말하기엔 지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았다. 문헌의 기록에 동양골(동자골, 동장골 등)은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좌광천 상류 소하천에 도달하는 계곡물이라고 기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증언자를 찾았다.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이 발원지에 대한 정황을 뒷받침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인의 소개로 박규진 두명리 이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박규진 이장님은 선대에서부터 두명리가 고향이며 선산을 지키고 있는 후손이었다. 이장님에게 수영강의 발원지에 대해서 문의하니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 주셨다.

 

이장님 추정 수영강 발원지 4곳 답사

“수영강 발원지는 네 개로 봐야 한다. 진태고개에서 동양골로 흐르는 계곡물과 진태고개에서 추모공원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있고 용천산 뱀밭골에서 나오는 물과 백운산 웅골에서 나오는 물이다. 모두 네 갈래로 흘러서 두명천 두명3교 아래로 모여서 수영강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발원지에 대해 여러 생각과 정보를 접하는 동안 어느 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하천의 발원지라는 것은 모든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모두 발원지가 된다’는 것이다. 향토역사지에 나오는 옛 글과 말들로 온통 복잡하게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필자에게 이 한마디의 정의는 명쾌하게 머릿속을 정리해 주었다. 수영강의 발원지가 동양골이냐 뱀밭골이냐에 이분법적 잣대를 두기보다 필자가 조사하고 연구하고 탐사하여 얻은 결과대로 수영강의 발원지를 말하고자 하면 되었다.

박규진 이장님이 설명하셨던 수영강 발원지 네 곳을 모두 답사할 계획으로 박규진 이장님을 우리 회원들과 만났다. 동양골은 이미 방문해 보았으니 이번에는 뱀밭골을 답사할 계획이었다. 뱀밭골은 용천산(544.6m) 고지의 5분의2 지점이 되는 200m 정도 되는 곳에 있었다. 이장님은 뱀밭골이 용천산에서 두 갈래로 흐르는데 수영강으로 가는 갈래는 가지웅디라 불렀고 다른 갈래는 광산에서 납석물이 나와서 중금속이 섞이는 물줄기여서 이 물줄기는 좌광천으로 해서 일광으로 빠지게 했다고 한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일이었다. 가지웅디에서 부터 그 아래 일대가 뱀밭골이라 불리었는데 가지는 가재의 방언이고 웅디는 웅덩이의 방언으로서 가재가 많이 잡히는 웅덩이였다고 한다.

 

용천산 뱀밭골 답사, 큰 용기로

용천산은 일제강점기에 철을 캐는 광산으로 뱀밭골 지점을 파 헤쳐 놓았다. 캐어낸 철을 운반하기 위해 헬기장도 만들었고 수레를 나를 수 있는 레일도 깔아 놓았다. 또한 지름이 80cm정도하는 토굴의 입구도 보았다. 광산에서 철을 캐던 중 일본이 2차 대전에 항복하고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후 광산은 이제껏 그대로 방치가 되어 있어 돌들의 부식이 심했다. 철 성분이 많아서 그런지 캐어진 돌덩이들은 그동안 비바람에 삭아서 발을 디디면 과자처럼 바스러지기도 하고 주상절리처럼 편으로 갈라지기도 하여 필자를 상당히 겁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부식된 돌덩이 사이로 떨어진 소나무씨앗들이 작은 소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그 구멍 난 광산을 메우려면 얼마큼의 세월이 더 지나야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광산의 머리 위는 바로 하늘이었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아시는 이장님은 저만치 훌쩍 걸으셨고 겁이 많은 필자와 동행한 회원님은 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를 도우려고 함께 뒤쳐져서 조심스럽게 광산 속을 걸었다. 그때 새소리와 함께 작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저만치 위에서 이장님이 우리를 보며 말하셨다. “저 물이 뱀밭골 물입니다.”

발을 디디면 바스라지는 돌덩이와 자칫하면 돌덩이가 굴러오거나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위험에 겁이 나서 정신이 혼미한 필자에게 물소리와 새소리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아~~~ 이 물이 아래로 흘러 두명천으로 해서 수영강으로 가는구나....’ 뱀밭골의 물소리와 작은 물줄기를 보며 수영강의 발원지를 보게 되어 감격스러웠다. 이 물들이 조금 더 아래로 가면 하늘연못이 있는 곳에 이르러 기가 막히게 맑은 물로 고여 있다.

 

뱀밭골은 어디? 용천산 하늘연못 일대

용천산 자락 5분의1 지점에 하늘 연못이 있었다. 우리가 답사를 하였을 때는 1월의 겨울이었는데 가뭄이 심해서 물이 말랐지만 바닥은 질척이고 있었다. 이 연못에 늘 물이 고였다는 증거가 바위에 보이는 검은 표시였다. 30cm정도가 검게 칠해졌고 물이 평상시 그 정도 높이로 잠겨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하늘 연못은 이봉상 주민과 함께 답사를 하였는데 하늘연못 아래 샘물에는 십 여 개의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호스 입구에 양파 망을 씌워서 낙엽 등을 걸러내게 했다. 박규진 이장님은 광산에서부터 하늘공원 일대가 뱀밭골이라 하셨다.

 

수영강 발원지, "용천산 뱀밭골이다"

뱀밭골 답사를 마치고 나자 이장님이 큰 숨을 쉬셨다. 우리들과 답사를 위해 며칠 전 부터 ‘안전하게 잘 다녀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이곳은 멧돼지가 출몰하기도 하고 가파른 능선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염려를 많이 하였는데 무사히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이장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뱀밭골의 현장과 마을 원주민의 증언도 들었으니 문헌자료의 뒷받침을 찾아보았다. 정관향토역사서에는 뱀밭골이 용천산(544.6m) 서쪽으로 뻗은 뱀등 옆 골짜기, 뱀등에서 뱀발이 뻗친 계곡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용천산 골짜기 물이 두명으로 흘러 회동으로 간다는 설이 수영강의 발원지가 뱀밭골 임을 확인 하게 되었다.

뱀밭골 답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웅골을 답사하였다. 웅골은 두명천 두명3교 오른쪽 방향으로 길게 걸어가다가 산으로 이르게 되는데 기가 막히게 맑은 물이 내려왔다.

조그마한 청개구리도 보았고 물여뀌와 물봉선화가 어여삐 피었으며 맑은 금빛 모래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깊고 어두운 계곡과 절벽이 높아서 겁이 많은 필자는 성큼성큼 다가갈 수가 없었다. 용감한 회원님이 앞서가시다가 기겁하여 돌아 나오시는데 돌덩이안의 말벌 집을 건드리셨다고 했다. 아!! 그 때의 당황함과 두려움이란!!

 

웅골답사

정말 다행히도 말벌들이 외출을 했는지 두세 마리만 회원님 근처에 앵앵거리다가 도망치듯 나온 우리들을 더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리가 풀려서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고 계곡아래 물만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말벌 집 건드린 후유증은 한참 지나서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웅골은 숲이 깊었고 산등성이가 우직하니 정말 곰의 등어리 같다는 느낌이었다. 웅골의 지명유래가 곰 등어리 같다고 했고 옹기 같기도 하여 전해지는 지명이었다. 트라우마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어서 두 번째 방문도 더 깊이 산속을 찾아들지 못하고 돌아서 왔지만 웅골의 맑고 깨끗한 생태와 환경이 선연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웅골의 답사를 마친 후 박규진 이장님이 말씀하셨던 수영강의 발원지라고 하는 네 개의 물길을 정리해 보면 웅골은 수영강에 합류하는 지천으로 보았고 동양골과 진태고개의 물길은 좌광천의 상류로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수영강의 발원지는 뱀밭골이라고 확정하게 되었다.

수영강 발원지에 대해서 골몰하였던 2013년 이후, 꾸준히 수영강 상류에서 하천활동을 하다 보니 수영강의 발원지가 백운산 웅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강 하류에서 상류까지 본류의 직선거리를 보자면 용천산이지만 실제로 두명3교에서 만나는 백운산 웅골의 물길이가 뱀밭골보다 더 먼 것 같았다. 최근,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홈페이지의 ‘하천용어해설’을 보니 발원지에 대한 정리를 다음과 같이해 놓았다.

‘하천의 발원지는 역사나 문화를 토대로 유명한 산에 있는 샘이나 물을 발원지로 보기도 하고, 일제때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것을 사용하기도 하여 발원지에 대한 설이 많았으나, 2000년부터는 건설교통부에서 「한국하천일람」에 하구에서 가장 먼 곳을 발원지로 표기하였음’

 

수영강발원지, 백운산 웅골??

수영강 발원지에 대한 정의를 찾으려고 필자는 정관면 향토역사서와 신증 정관지와 한국지명유래 경상편과 유수의 향토지를 찾아보며 기록의 공공성을 찾았으나, 부산지방국토관리청 하천발원지 정의를 보니 말문이 딱 막히는 듯 했다. 현대적으로 가장 간결하고 명징한 표현이었다. 현대는 측량도구도 과학적이고 세밀하니 옛 문헌 따위가 소용이 없는 듯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가 최근에 수영강의 발원지가 용천산 뱀밭골보다 백운산 웅골일 가능성으로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하천의 길이가 뱀밭골보다 길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뱀밭골은 두명천과 만나기 전에 복개가 되었고 두명3교에 이르러서 관로를 통해 물이 내려오지만 웅골의 물줄기는 백운산의 깊은 골짜기 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그 길을 탐사하였기에 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수영강 발원지에 대해서 다시 정리를 해 보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의 개념대로라면 수영강의 발원지는 추후 밝혀질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수영강의 발원지가 어디라고 표기해 놓지는 않았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옛 문헌과 원주민의 증언과 현지답사의 결과를 봐서는 동양골이 아님은 명백하다. 용천산 뱀밭골과 백운산 웅골 중 가장 거리가 먼 곳이 발원지가 될 터인데 지도를 보면 수영강 최상류 지점이 백운산 웅골 방향으로 활처럼 휘어져서 멈추어져 있다.

수영강 발원지 이야기에 백운산의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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