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나는, 두릅나무 파수꾼
봄이면 나는, 두릅나무 파수꾼
  • 꽃소리
  • 승인 2020.04.09 11: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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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나무와 두릅나무

 

                                                                                       꽃소리(정원디자이너)*

                   

 

가시가 무서워

우리 집 대문간엔 아주 큰 음나무 두 그루가 떡 버티고 섰는데 좀 무섭다. 나무껍질을 온통 뒤 덥고 있는 그 울퉁불퉁한 가시들은 상당히 위협적일 뿐 아니라 어쩌다 찔리기라도 하면 엄청 아프다. 거기다 볼품없이 크기만 한 잎들이 만드는 그늘은 주위의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예쁜 꽃도, 맛있는 열매도, 멋진 자태도, 무엇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없어, ‘저 로얄 석에 예쁜 꽃나무를 심지 어쩌자고 저렇게 무시무시한 나무를 심었을까?’  볼 때마다 투덜거렸었다.

 

집지킴이 음나무, 무섭게 무장한 모습
집지킴이 음나무, 무섭게 무장한 모습

 

 

 

누구나 탐내는 새순

이사 온 다음 해 봄, 우리 집 뒷산에 무얼 좀 캐러 간다며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뽀족뽀족 새순을 달고 있던 음나무를 보곤 그 앞으로 끌리듯 다가가 멈춰서는 게 아닌가. 꽃밭 안엔 수선화, 튤립, 산앵두, 꽃잔디, 봄꽃들이 꽃 잔치를 벌이고 있었건만 아랑곳 않고 왜 음나무 앞일까? 은근히 궁금해 풀 뽑다 일어나 다가갔다. “새순이 더 자라면 억세어져 못 먹는데.” “네? 저걸 먹어요?” 사실 음나무의 존재 자체를 이 시골집에 이사 와서 알았으니 그 새순을 먹는다는 걸 어찌 알았으랴.

 

엄숙하구나, 너 생명 지키는 모습

그렇게도 눈총을 주었던 음나무였지만 그 아주머니 얘기 이후로는 다시 보게 되었다. 음나무 새순을 먹을 수 있다는 효용가치 때문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수탈 속에 당했을 그 고통이 애처로워서였다. ‘얼마나 잎을 지키고 싶었으면 저렇게 큰 가시들을 달았을까?’ 그리고 어느 날 우리 나무에 관한 책을 보다가 음나무에 얽혀 전해내려 오는 옛이야기를 발견했는데 이러했다. 옛사람들은 음나무 그 센 가시에 잡귀들이 걸려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음나무를 대문간에다 심었다고. 옛사람들의 음나무에 대한 그 기대, 참 재미있지 않은가?

 

나물뜯기, 생명에게는 잔인한 봄, 두릅지킴이 되다

우리 집 뒤쪽 비탈엔 음나무와 비슷한 운명의 두릅나무가 아주 많은데, 그 많은 두릅나무 대부분이 정상 성장을 못하고 비실거렸다. 아예 죽은 채 서있는 나무들도 상당수. 도대체 봄의 새순을 얼마나 땄기에 저렇게…. 그 맛이 궁금해 음나무와 두릅 새순을 먹어 봤지만, 나무를 초토화 시키면서까지 따먹을 만큼 맛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별 맛도 없는 두릅, 음나무 잎, 고로쇠 수액 등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광하며 찾을까? 옛날처럼 배고파서는 아닐 테고, 오로지 몸에 좋으니까? 에그, 아무리 그래도 나무가 제대로 성장할 만큼의 배려는 그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텐데. 나무에게 잎은 숨구멍이나 다름없다. 성장의 근원인 탄소동화작용을 잎에서 하니까.

 

다 띁기고 끝에만 달려있는 새순, 비실비실한 가지로 뿌리로 생명력을 뻗는 두릅
다 띁기고 끝에만 달려있는 새순, 비실비실한 가지로 뿌리로 생명력을 뻗는 두릅

 

 

 

 

나를 긴장시키는 두릅잎

내겐 별 맛도 없고 예쁘지도 않은 두릅과 음나무였지만 지켜주고 싶었다.

 

                                       

생명의 숨구멍마저 뜯어가는 사람의 손에 겨우 하나 남은 두릅나무잎
생명의 숨구멍마저 뜯어가는 사람의 손에 겨우 하나 남은 두릅나무 새순

 

그런데 음나무는 눈에 잘 띄는 대문간에 있고 키도 커서 괜찮았지만 두릅나무는 담장도 없는 산비탈 인접한 곳에 있다 보니 약초꾼이나 산나물꾼들로부터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릅 잎이 억세어져 못 먹을 때까지는 긴장한다. 꽃밭에서 일하다가도 산 쪽으로 사람이 올라가면, 연장 든 채 슬며시 나도 따라간다. 매년 봄이 되면 난 아픈 두릅나무 파수꾼이 된다(산청 별총총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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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환경신문 2020-04-08 12:04:10
꽃소리씨는 교육자이자 귀농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