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무 릇
꽃소리(정원디자이너)*
사계절 내 꽃밭에 피고 지는 수많은 꽃들 예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예쁘다는 공통점에서 좀 더 갈래를 지어 꽃들이 뿜어내는 그 정취를 표현해보면 화려, 고고, 청초, 우아, 단아…. 모두 다르다. 특히 꽃밭에서 직접 길러보면 더욱 그러한데 아마 꽃들마다 다른 한 살이 모습도 한 몫 하리라. 그렇다면 꽃무릇엔 어떤 수식어를 떠올릴 수 있을까? 제법 굵직한 진초록 곧은 줄기, 잎이 없어 더 도드라지는 그 줄기 위에 단정하게 올라앉은 고운 선홍빛 꽃송이들. 만발한 꽃무릇을 대할 때면, “아!” 발걸음 절로 멈춰지는데, 그 어여쁨의 감탄 뒤엔 왜 자꾸 ‘처연함’이 따라오는가?
꽃무릇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고 따로 피어 상사화 무리에 넣는데, 우리가 상사화라고 부르는 연보라 꽃과는 완전히 다른 꽃이다. 그런데 꽃의 한 살이를 보면 오히려 꽃무릇이 상사화의 그 안타까운 의미에 더 가깝다. 연보라 상사화는 봄에 잎을 내어 서너 달 싱싱히 꽃을 기다리지만 초여름이 시작되면 어느새 잎이 허물거리다 사라진다. 하지만 길어야 두어 달 후면 꽃대가 올라오는데, 그저 ‘에그,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꽃을 봤을 텐데.’ 뭐 그런 느낌. 그러나 꽃무릇은 초가을 어느 날 홀연히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질 때 쯤 서둘러 초록 잎들이 뾰족뾰족 올라오지만, 결코 둘은 만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이후 꽃무릇 초록 잎의 처절한(?) 기다림은 길러보지 않으면 모르리라.
꽃무릇의 개화 기간은 길어야 열흘 정도. 그 꽃을 보지 못한 잎들은 가을에 부지런히 잎을 키워 긴긴 겨울 얼어붙은 꽃밭에 바짝 누워 버틴다. 따뜻한 봄이 와, 수선화 튤립 여기저기 두런거릴 때 까지 기다리다 지쳐 끝내 잎들은 조금씩 말라 사라지는데 그 기다림의 기간이 7~8 개월은 족히 된다. 내가 너무 신파조로 꽃을 보나? 뭐 어쨌든 꽃무릇이야 말로 명실상부 상사화다.
어느 겨울 읍네 도로 확장공사로 보도 옆 꽃밭을 모두 갈아엎는다는데, 그 꽃밭엔 꽃무릇이 지천이고 그 꽃무릇 캐내도 된다는 정보가 들어 왔다. 당장 삽 들고 돌진! 꽃무릇의 양은 예상보다 엄청났다. 파보니 뿌리도 꽤 굵직했다. 산삼을 캔들 그리 흥분되었을까? 캐 온 꽃무릇 연 이틀 다리가 저리도록 심었는데도 밤에 누우면 두고 온 꽃무릇이 자꾸 아른거렸다. 그 뒤 친구, 동생, 놀러 오는 사람마다 부추겨 꽃무릇을 캐 왔었다. 내 꽃밭엔 더 이상 심을 데가 없는데 그 꽃밭엔 캐 낸 것보다 더 많은 꽃무릇이 남아있었다.
두고 온 그 꽃무릇은 이후로도 불쑥 불쑥 떠오르다, 아예 마음 속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들어앉는 것 같았다. 왜일까? 그 꽃들이 버려짐에 대한 경제적 손실 때문? 아니,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으리라. 그 꽃밭에서 버려지는 꽃들이 어디 꽃무릇 뿐이었던가. 월동 중이던 수많은 꽃들이 있었건만 왜 꽃무릇만 그리 맘에 밟혔을까?
아마도 그건 초록 싱싱한 그 잎 때문이었으리라. 엄동설한 찬 서리 눈 속에서도 꿋꿋한 잎들은, 땅 속 깊은 구근이나 포근한 털옷의 꽃나무 겨울눈과는 차원이 다른 겨울나기다. 결코 만나지 못할 선홍 꽃잎을 위해 맨 잎사귀로 온 겨울에 맞서는 그 푸른 잎들, 조금이라도 더 지켜주고 싶었다. 굴삭기 굉음 속에 나딩굴기 전에(산청 별총총 마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