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박근혜 시대, 보수의 리더는 누구일까

보수 우파 대통령 탄핵은 어느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니다 취임 후 장기간 여론 조작과 참사 등 철저히 기획하고 준비되어 실행되는 무서운 종북 ㆍ종중 좌파들의 대선 불복 프레이밍에 기반한 정권탈환 시동이다. 탄핵은 보수분열을 촉매로 한다. 우파 대통령 탄핵은 자유대한민국 체제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좌파들의 통일전술 전략의 일환이므로 헌재는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탄핵 5적은 문재인ㆍ조국ㆍ박지원, 홍남기, 정세균(이해찬)이다. 김무성은 탄핵5적과 달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박근혜를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 희생자였다. 보수통합을 기치로 선거 때마다 큰 공을 세운 우파 리더 김무성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재평가 필요하다

2022-02-14     부산댁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지켜내는 제도권 정치인으로서 김무성(이하 모든 이 존칭ㆍ직함 생략)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 존재이다. 그러나 그의 빛나는 정치 행보 뒤에는 아직도 덜 지워진 박근혜 그늘이 있다.  

박근혜 탄핵은 좌파가 체제전환을 급격히 시도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론 공방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박근혜 탄핵은 이제 "나"는 아닌 "네가 " 라고 책임 회피를 하기 보다 당시 우파 모두가 좌파의 정권 찬탈 시나리오에 의한  탄핵 동조자ㆍ가담자ㆍ피해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좌파의 정권 찬탈을 위한 시나리오는 진보집권 플랜으로, 세월호 침몰 국가 책임론으로,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사법적ㆍ정치적ㆍ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

탄핵의 아픔을 딛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핵분열을 했던 보수 우파가 다시 재결집되어 위대한 대한민국 재건과 자유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박근혜가 ' 내가 탄핵을 요구했다, 그러나 언론과 사법계를 장악한 철저한 시나리오에 의해 우리가 졌다, 이제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 우파 국민들은 단합해 대한민국을 자유통일 선진국으로 우뚝 세워달라'고 지지자들과 일반 국민들에게 일성을 하는 것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과감한 일성이 박근혜를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도록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하고 양식있는 국민들은 걱정한다. 어떻게 해서 그나마 작은 질서라도 있다고 믿어 온 우리 정치권이 혼돈상태로 빠져, 한 치 앞을 못 보게 되었을까? 그것은 대통령 탄핵이란 초유의 사건을 통해 로드맵 없이 기존 정치 질서의 빅뱅이 일어나면서 민주주의 위장세력들이 행정ㆍ입법ㆍ사법ㆍ언론을 모두 장악하고 독재가 가능한 비정상적 국가체제가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퇴행시킨 탄핵에 따른 휴유증이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역사에 대한 성찰과 지속가능한 미래 리더십 구축이 필수적이다.  정권교체는 민주사회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체제를 바꾸는 정권교체는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의 최대 문제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박근혜 태풍은 당위성 있어야 위력 발휘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망증이 많고 자살이나 옥살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인정많은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도 대통령 재임시 "남북문제만 잘 되면 경제는 망해도 좋다"는 그의 공언대로 경제가 엉망이었다. 퇴임 직전 노무현 집권세력은 스스로 폐족이라고 단죄하고 정권을 넘겨 주었다. 당시 우리 경제가 엉망이라 이명박이 경제 살리겠다고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자살후 노무현은 노무현정신으로 다시 정치거인이 되어 부활했고 그때의 폐족은 촛불세력이 되어 집권을 했고 그 결과는 참담한 절망으로 이어졌다.

박근혜도 2016년 연말  당시 이대로는 도저히 국정을 못 맡기다며 촛불세력을 지지하고 국회탄핵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탄핵이 되고 장기간 옥살이를 하고 나니 위대한 지도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렇게 과거를 쉽게 망각하고 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수시로 달라진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에 의해 한 인물의 평가가 좌우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인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역사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님의 아픈 상처를 또 들춰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정계복귀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한 이것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미래가 더 발전적이고 건설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집권 중 최대 위기는 단연 세월호 사건이다.  세월호 7시간은 늘 촛불부대들의 박근혜 공격의 단초가 되었다. 이후 미르재단 등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으로 박근혜는 강력한 부인보다는 사과로 일관해 민심수습을 하려 했기 때문에 민심은 들끓었고, 이것은 마치 들불처럼 더 번져만 갔다. 검찰이 박근혜의 죄를 늘려 갈 때 사과보다는 반박과 고발로 정국을 헤쳐 갔어야 했는데 모든 법적 투쟁을 포기하고 백기 항복을 하였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당시 검찰 발표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헌정사상 유례없이 현직 대통령을 검찰이 제3자뇌물죄로 기소하였을 때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당시 강하게 검찰 기소의 부당성을 제기하고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사과로 일관하고 국정농단 증거로 내민 태블릿 PC도 부인하지 않았다. 사과에 사과를 거듭했다. 당시 우리 국민의 민주화 요구 수준이 높아졌고, 야권과 시민세력들이 촛불집회로 정국을 마비시켜 놓은 상태에서 수습책은 하야나 탄핵밖에 없다고 체념했다. 이 체념이 탄핵이란 잘못된 역사적 결과를 초래했다. 

박근혜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도 타오르는 촛불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순식간에 치밀하게 계획된 탄핵 시나리오와 법조계 네트워크의 연계속에 노무현처럼 헌재에서 부결될 줄 알았던 탄핵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역사가 바뀌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4년간 옥고를 치른 희생으로 과거 박근혜의 과오는 묻고 박근혜 우상화 일색의 유튜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정치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 앞으로 박근혜가 어떠한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 국한해 보면, 박정희팔이 콘텐츠는 지속가능할 수 있지만 박근혜팔이 콘텐츠는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고 본다. 박근혜 명예회복은 박근혜가 회고록을 발간하여 국민에게 알리는 길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모든 형이 대법원에서 결정된 후 사면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법적으로 뒤집을 수는 없다.  

 

박근혜 무덤은 스스로 파, 국회탄핵은 박근혜가 원했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사기탄핵에 참가한 소위 사탄파 김무성 때문에 박근혜가 감옥가게 되었고 정권을 문재인에게 뺏겨 나라가 파탄났다고 한다.  이것은 탄핵 당시는 침묵했지만 박근혜 투옥후 조원진과 일부 유튜브들이 당시 역사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우파가 스스로 참 역사를 부정하면 좌파에게 이번 대선에도 지게 되어 있다. 정직하게 역사에 임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하야, 하옥" 시위는 날이 갈수록 규모가 더 커져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고서는 수습이 안 될 정도,

                       박근혜도 하야냐 탄핵중 하나를 선택해서 수습을 해야 하겠다고 최종 결심하게 된다 (2016. 11. 19)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및 지도부 사퇴 논의중 친박계와 비박계 격돌(2016.11월 4일 오후 새누리당 의총)

 

박근혜 무덤은 박근혜가 팠다. 김무성이 도와 주려 나섰을 때는 이미 촛불로 화재가 나 집을 태우고 있는 시점이라 아무리 수완이 있어도 역부족이었다. 무너진 박근혜 리더십을 보고도 수습을 않는 당시 당대표 이정현과 친박 핵심 지도부도 문제다. 그 때 이정현이 김무성의 뜻을 적극 따라 개혁에 나서서 당을 시급히 재건하고 탄핵소추안이 헌재에서 가결되지 않도록 워치독을 했어야 했다.당이 나름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해서 위기를 넘겨야 하는데 복지부동이었던 당시 이정현 대표에 불만을 품은 당내 신진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우파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해서 바른정당이 창당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기치를 내걸면 따라올 줄 알았던 의원들이 그대로 남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역사상 처음으로 보수 정당이 분열되었다. 

구심점이 된 박근혜가 헌재에서 탄핵되니 우파정치의 불은 완전히 꺼졌다. 그 이후 우파들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분열하기 시작했다. 탄핵 때 침묵했던 조원진은 박근혜가 구속되자 국민들의 동정심을 이용해 태극기부대를 만들어 박근혜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보수분열로 결집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거리의 구명운동은 정치권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좌파가 기획한 박근혜 탄핵은 세월호 사고가 단초라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탄핵을 국회 표결과정만으로 국한해 말하는 사람은 장님이 코만 만지고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2016.12.3

 

 

박근혜 4가지 우

박근혜는 우파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4가지 우ㅡ  소통부재, 후계자 안 키우기, 보수분열, 한미동맹 파괴ㅡ를 범했다.

첫째는 소통문제다.  당대표 및 장관과 정책협의 위한 연락두절ㆍ소통차단 한 채 김기춘 비서실장, 문고리 비서3인, 최순실과만 소통하였기 때문에 국정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둘째는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다. 보수가 재집권을 하려면 후계자들을 많이 키워야 하는데 박근혜는 누구도 키우지 않았다. 당시 최측근 최경환도 대통령감은 아니었다. 이것은 정권을 좌파에게 넘겨 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치열했던 대선에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일등 공신 김무성을 후계자로 키웠어야 했다. 철저히 당대표인 김무성을 배제한 채 모든 국사가 진행되다 보니 실수가 많았다. 박근혜는 김무성을 철저히 국사에서 배제하는 등 배신의 정치를 몸소 실천했다. 탄핵의 빌미가 된 미르재단은 당대표 김무성도 모르게 최순실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둑각시가 되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삼성 이재용도 박근혜 때문에 뇌물죄로 구속되었다.

셋째는 보수분열이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 공천권이 있는 당대표 김무성을 배제하고 최측근을 통해 공천에 직ㆍ간접 개입하였다. 그 결과 친박, 비박, 진박 등 보수분열을 좌초해 2016총선은 대 패배로 끝났다. 박근혜에게 공개적 반기를 든 유승민을 공천에서 배제하여 여론이 좋지 않자 당시 당대표이던 김무성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총대를 멘 것이 이른바 옥새 날으새 사건이다. 유승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주는데는 성공했으나 김무성은 이로 인해 심한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당장 하야보다는 국회에서 탄핵하면 헌재에서 부결되어 대통령 자리를 유지할 줄 알았던 김무성의 판단은 헌재판결로 또 다시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몸을 던져 구해 준 유승민이 바른 정당 대선 출마후 우파 단일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완주하는 바람에 김무성은 새로운 배신을 맞았다. 박근혜와 유승민의 배신이 한 남자의 눈물의 실체다. 

넷째는 한미동맹 균열이다. 박근혜는 시진핑과 오랜 우정으로 한미동맹보다 한중우호 친선에 더 무게를 두었다. 이것이 탄핵으로 가는 직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외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근혜는 삼성에게 시진핑의 고향 시안에 공장을 짓도록  종용하여  한국의 휴대폰ㆍ가전 기술을 중국에 전수해 주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박근혜의 위험한 친중우정 외교로 한국의 첨단 기술유출을 우려한 미국은 즉각 견제를 하여 박근혜 정부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수출 자동차가 미국에서 100만대 리콜당했다. 이 사태는 박근혜의 읍소성 대규모 사절단 방미와 미국 투자약속으로 일시 해소되기는 했으나 전운은 끄지 못했다. 한미동맹 균열탓이다. 미국의 외교전략은 우방국에는 경제제재를 먼저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지도자 교체를 한다. 적성국은 먼저 경제제재를 하고 안 되면 군사행동을 한다.  

그 후 박근혜는 미국의 의중과 정반대로 친중우정외교를 가속화해 급기야는 중국의 안보동맹국만 참석하는 전승절에 반기문을 대동한 채 참석했다. 이것이 동맹국 미국의 분노를 샀다. 최대의 외교결례이자 한미동맹 와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계속되는 박근혜의 친중외교로 한국을 믿지 못하자  미국은 그 다음 단계로 자구적 한반도 안보를 위해 사드배치를 하였다. 그 결과 사드배치에 화가 난 시진핑이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였다. 사드배치와 관련있는 롯데가 중국에서 밀려나고 중국의 대한국 투자와 방한 중국여행객이 끊기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왔다. 설상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배상문제가 타결되면서 급속히 가까와진 아베 일본과의 스킨십 외교는 중국과의 우정 외교를 끝내게 만들었다. 세월호 기획성(?) 난파 사고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국내 리더십도 붕괴되는 등 박근혜는 점점 몰락의 길을 자초해 가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 말기, 국내경제가 어려워지고 사드로 안보까지 흔들리자 민심은 서서히 조금씩 박근혜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탄핵 5적은 누구인가ㅡ홍남기ㆍ 문재인ㆍ 조국 ㆍ정세균(이해찬)ㆍ박지원

탄핵 1등 공신  홍남기, 청와대 근무

조원진과 김문수가 주장하는 이른바 탄핵5적은 김무성, 유승민, 권성동, 김성태, 홍준표이다.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탄핵표결만 본 결과론적, 미시적 시각에서 책임 폭탄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탄핵의 1차적 책임은 원인 제공자인 박근혜다. 가장 큰 희생양인 김무성은 국정 수습에 앞장 선 사람이다. 왜 이런 분석이 나오는가? 박근혜 탄핵이 하루 이틀만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박근혜 취임후 한미동맹이 와해되고 보수내부 갈등이 촉발되자 이것이 기회라고 보고, 오랜 기간 탄핵을 기획하고 준비한 자가 탄핵5적이다. 박근혜 배신자는 청와대 내부에 있었다 홍남기 비서관이 당사자로 장관 청문회때 지목되었다. 오랜 기간 탄핵 관련 법들을 조사하고 헌법재판관들과 소통하며 이에 적합한 자료를 준비ㆍ분석하여 탄핵시점을 노린, 이른바 박근혜 탄핵플래너(planner) 문재인ㆍ조국ㆍ 홍남기ㆍ정세균ㆍ박지원이 탄핵 5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5적들의 일사분란한 탄핵 시나리오대로 대한민국이 쓸려 나갔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탄핵이 부결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이들의 물밑작업으로 전원합의로 박근혜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가결되었다.  보수 정치권의 약점을 굳이 지적한다면 자체 공격 논리를 개발하는 것보다 방어논리에 치중하고 내부 희생양을 찾기 바쁘다.  박근혜  탄핵 5적은  박근혜를 끌어내리기 위해 취임초부터 탄핵을 기획하고 실천한 문재인ㆍ조국ㆍ박지원ㆍ홍남기ㆍ정세균(이해찬)이었다. 이들의 자유민주주 체제전복 프레이밍도 인지하지 못하고 헌재는 여론 재판형 탄핵을 인용하였는데 이것은 헌재의 가장 큰 오점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의 가장 큰 희생양은 김무성

포스트 박근혜 보수우파 지도자는 누구일까?

험한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말없이 뒤에서 보수우파의 씨앗을 키우고 그 불씨를 살려낸 정치인이 있다. 그가 바로 박근혜 탄핵의 가장 큰 희생자인 김무성이다. 당 대표를 했지만 자기 사람을 한 사람도 공천하지 않은 사람, 소위 '옥쇄런' 파동 때도 자기 사람을 공천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간 게 아니라 능력보다 친소 위주로 공천해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표현이었지만 언론에서는 그의 진심을 왜곡 보도했다. 이 일로 당시 공천위원장이 공천 기한이 지나 유승민 지역구에 당이 공천하지 못하게 되어 그 자리를 비워 두게 함으로써 무소속으로 나온 유승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김무성이 당시 공천에 1석도 개입하지 않았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당대표직을 물러나는 깨끗함을 보였다. 그가 총선 패배에 책임이 있다 할 수 있는가?

그는 보수 우파의 가치를 살리고자 끝까지 노력하였고  보수 우파 정치를 재건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포스트 박근혜 우파 지도자, 우파 차기 대선 후보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김무성은 촛불세력의 끊임없는 견제와 공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이것은  노룩패스와 가짜 수산업자 공작으로 이어졌다. 

  국정원은 대북업무외 정치인과 기업인 포함 민간인 사찰을 해 왔다는 의혹이 늘 있어 왔다

 정권교체 대비 국정원 메인서버 교체, 증거인멸 하려 해서는 안 되는데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해체해 국가안보까지 위협하여 국정원의 조속한 공작업무 복원이 필요하다.

 

반기문의 배신과 바른정당 창당

그러나 그는 완성된 정치인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억울하지만 침묵했고 끊임없는 공작과 권력 견제속에 매번 낮은 리더십으로 대선마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 그가 포스트 박근혜 시대, 보수 우파의 리더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그는 2번 배신당했다. 한번은 박근혜가, 또 한번은 반기문이다. 김무성은 박근혜 대선 당시 선거 자금이 모자라자 자신의 건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 박근혜를 당선시켰지만 박근혜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선 뒤 박근혜는 차기 대선 주자로 김무성 대신 정치적 의지도 확고하지 않은 반기문을 키웠다. 그 결과, 보수 우파의 괘멸을 초래했다.

반기문은 김무성에게 새누리당 이미지가 나빠 갈 수 없으니 신당 창당을 요구했다. 김무성이 반기문을 영입하기 위해 천신만고끝에 바른정당을 창당했으나 반기문은 일고의 상의도 없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 김무성을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바른정당에서 유승민과 홍준표 후보 단일화를 노력했지만 유승민이 듣지 않아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했다. 변함없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무성, 사심없는 위기돌파 낮은 리더십으로 우파 단일화에 기여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 김무성은 당선뒤 박근혜에게 팽당하는 배신의 아픔을 겪었다. '박근혜는 얼음공주'라는 소문이 있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그가 '마음은 따뜻한 얼음공주'이기를 바라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지인들, 아니면 그를 가장 지근에서 모신 김무성(전 새누리당대표)일 것이다. 김무성이 모친상을 당해도 조문은 커녕 전화 한 통도 없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간에 위로 전화, 위로 방문 없음을 보고 얼음공주를 실감했을 것이다

 

'수고했다, 고맙다'가 없는 박근혜

당대표 임기동안 크고 작은 선거를 여러 차례 했지만 한번도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박근혜 리더십의 진면목이 여기서 나타나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가장 힘들 때가 선거기간인데, 한 번도 격려받지 못했던 김무성의 마음 한 구석은 쓰라린 상처로 남아 있을 터인데도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했다. 

그래도 김무성은 당대표시절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선거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기는 선거의 대원칙은 '내사람심기'가 아닌 국민의 뜻에 따른 상향식 공천 덕분이라고 김무성은 말한다. 단 한 번 2016 총선 때만 졌다. 친박실세가 김무성을 배제하고 능력위주의 인물공천 대신 박근혜 충성도로 공천권을 전횡했기 때문이다. 친박들은 2016  총선 패배 책임을 '옥쇄 나르샤' 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여 김무성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당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오직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박근혜의 경제ㆍ외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이러시면 이런 문제가 생기니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 번 소통을 시작했다.  끝내 연락을 하지 않는 박근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박근혜가 탄핵의 회오리 바람속에 있을 때 의리맨 김무성은 친박, 진박을 통해 박근혜의 진심을 알아내어 이를 국회 결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근혜의 속마음은 다름 아닌 선수습, 그 다음은 하야 아닌 탄핵이었다!  

탄핵을 결심하기까지에는 마음의 준비와 충격을 이길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 되어 박근혜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는데 내 손으로 탄핵을 하다니 하는 고민으로 김무성은 몇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고심에 고심을 다 했다. 최종 결심을 한 계기는 이것이 박근혜를 위한 길이고, 박근혜가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박근혜가 소집한 국가원로회의에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무효'라고 수많은 국민들을 광화문광장에 모아 국민의 힘을 공격하는 조원진의원도 박근혜를 구하려면 하야보다는 국회 탄핵밖에 없다고 하였다. 우파의 시나리오대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재판관이 우파성향이라 부결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헌재에서 박근혜 탄핵소추는 전원합의로 가결되어 박근혜는 구속되었다. 탄핵의 역사를 부인한다고 탄핵의 역사를 수정하여 탄핵을 무효로 할 수는 없다. 법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탄핵무효를 외치며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국민이 더 현명해져야 우리 정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무성에게 돌을 던지려면 그와 같은 길을 가 봐야 한다. 박근혜 우상화, 왜곡된 편파방송에 역사적 진실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세뇌당하고 있다. 

 

박근혜는 죄가 없다?  제3자 뇌물죄로 복역 

뇌물죄 형량은 15년, 단순뇌물죄(형법 130조)가 아닌, 뇌물죄의 가중처벌을 규정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적용되었다. 특가법은 수뢰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삼성 뇌물 86억 8081만원은 최순실 딸 정유라 승마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이다(정유라 승마 지원비 70억 5281만 원)과 최순실 소유 영재센터 지원(16억 2800만 원)이다. 박근혜는  1원도 직접 받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제3자 뇌물죄 처벌의 정당성에 대한 재규명이 필요하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이 되려면 그 누구보다 나라와 박근혜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김무성을 단죄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가 국정운영에서 먼저 당대표 김무성을 배제하면서 김무성을 버렸지만 김무성은 박근혜를 버리지 않았다. 박근혜가 중국 눈치를 보면서 사드 반대를 하는 등 한미동맹 파괴 직전까지 가면서 한때 국가 안위를 위태롭게 하였다. 김무성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언을 다 했고, 박근혜는 듣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는 그가 당대표때 절대 다수 친박 최고위원들이 집단 브레이크를 걸어 김무성이 아무 것도 추진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김을동은 김무성이 불쌍해서 나 혼자라도 지켜 주어야 하겠다고 토로할 정도로 박근혜의 김무성 견제는 심했다고 한다.   

 

                        * 2016 총선 공천룰 최고위 전운, 당 역사상 공천권을 하나도 행사 않은 당대표는 김무성이 유일,

                        박근혜 총선개입과 친박들의 난동은 민심이반으로 총선패배, 총선 책임지고 김무성 대표 사퇴, 

                        총선후 강해진 야권의 박근혜 제거 움직임 본격화, 총선패배는 국정기반을 잃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당시 청와대 정보특별보좌관 윤상현이 박근혜 지시로 공천관리위원장 이한구에게 전화한 것으로 추정된 녹취파일 공개(2016. 3. 9)

 

대선 중에 느닷없이 표창원이 성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는 퍼포먼스까지 하면서 박근혜 이미지를 훼손해 지지율이 급락했다. 이렇게 두었다간 안 되겠다 싶어 김무성은 선대본부장을 맡아 주야로 당사에서 숙식하며 박근혜를 어렵게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우파재건을 위해 보수 개혁파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바른정당은 기대했던 반기문이 도중 하차하자 유승민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 홍준표와 단일화 조건으로 출마하게 했다. 유승민은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와 단일화하라는 김무성의 충고를 끝내 듣지 않았고 대선후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에도 응하지 않았다. 유승민은 김무성을 배신했다. 그러나 보수우파를 재건하기 위한 김무성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후 바른정당 전 의원과 함께 자유한국당으로 가는 보수통합을 하려 했지만  유승민이 끝까지 남겠다고 하였다. 유승민과 결별한 채 김무성은 합당 지지 의원들과 함께 자유한국당에 다시 합류해 보수통합을 실천하였다. 이것이 다음 대선 승리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보수 분열로 남겨진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과의 보수통합은 2020 총선때에야 마침내 이루어졌다. 유승민은 바른미래당에서 개혁보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지 못했다. 합당한 국민의 당 의원들이 현 정권의 법적 통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법안들의 국회 표결시 민주당 이중대 역할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유승민의 개혁보수는 빛이 바래졌다. 바른미래당이 남긴 최대의 역사적 과오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될 뻔한 공수처를 검경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으로 탄생시키도록 일조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안철수와 유승민이 책임질 부분이 있다.

빛 바랜 개혁보수, 정치개혁 실패로 끝난 유승민을 다시 품을 수 있는 리더십은 오직 김무성밖에 없었다. 그는 한 번도 박근혜가, 유승민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잠시 딴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는 생각으로 늘 다시 포용하는 통 큰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푸른 바다가 되고 고래들이 살 수 있다. 그는 보수 정치권에서 푸른 바다였고, 고래였다.

 

 

 

이제 무너저 가는 대한민국이 살 길은 우파 정권교체뿐이다. 우파에서는 안철수가 윤석열을 집중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좌파 이재명은 홀로 독무대를 누비면서 우파가 끝까지 분열해 보수표를 깨 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끝까지 가면 정권교체는 없고 좌파의 정권재창출로 귀결된다. 좌파 진영은 여론조작과 부정선거등 대선기획플랜으로  원하는 대로 당선자를 만들 수 있는 사전투표 비율 20~30% 확보, 여론조작, 전자개표 상수 조작 등 각종 선거범죄가 기획될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가끔은 국민 중에는 김무성에게 왜 어려운 고비마다 국민에게 위로가 되는 사이다 발언을 하는 등 투쟁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을까를 묻고 싶을 것이다. 그의 침묵은 박근혜 탄핵 주동자로 덧 씌워진 오명으로 늘 고민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는 당대표와 당 상임고문 등의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당내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늘 낮은 리더십으로 일관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정권교체라면 누가 우파의 후보가 되어도 단일화만 되면 정권교체 승률은 분명히 있다고 김무성은 간파했다. 윤석열과 회색 우파ㆍ보수분열 공작조 안철수간 어려운 보수 단일화 역할을 김무성이 해냈다.  큰 정치인 김무성의 정치적 역량으로만 가능한 역사적 성과였다.

 

2020 치열했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영선의 온갖 네거티브와 사전선거 부정의혹에도 오세훈이 이기게 된 것은 보수 단일화를 어렵게 성사시킨 김무성 리더십 덕분이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분열을 막아 시대정신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도록 김무성의 사심없는 낮은 리더십이 발휘될 때가 오지 않았나 기대된다. 

 

마포포럼으로 후배 키우다

그에게는 험난한 바다 사투속에서 살아 나온 철인의 모습이 보인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 도구, 정치발전을 위해 후배 정치인들을 위해 조력자가 되겠다는 그와 같은 원로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에 많았으면 좋겠다. 그는 '더 좋은 세상으로' 란 정치 비전을 내걸고 매주 마포포럼에서 현역 정치인들과 소통하고 있다. 안철수는 물론이고 한 때 박근혜를 사이에 두고 대척의 연안에서 갈등했던 친박 김태호도 마포포럼에서 그의 정치비전을 이야기했다. 마포포럼은 그의 국민통합 정신 아래 한국의 대표격 정치포럼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반문

 

박근혜 탄핵의 교훈은 보수분열은 정치적 먹잇감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까지 위협하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국민대통합의 리더십만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고 국가발전으로 가는 기초가 됨을 보여 주었다. 

 

 

 

김무성, 그는 어떤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이제 그의 정치역정은 전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늘 그의 마음은 한결같다.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진정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민바라기 정치인, 국민대통합의 리더 김무성의 애민정신과 애국심이 대한민국을 새로운 도약기로 접어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그가 보내는 국민을 향한 진정성,  '내가 만일' 에 닿았다  

 

 

 

  【참고자료】

김상민. 2018. 『탄핵』. 땡큐미디어그룹,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