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실종에서 얻은 교훈
꿀벌의 실종에서 얻은 교훈
  • 김승윤
  • 승인 2022.04.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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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들은 왜 사라지는가

 

 

 

 

농장 옆 매원에 매화 꽃망울이 터졌다. 꽃에 모여든 벌들이 즐거워 보인다. 뒷산의 진달래도 분홍빛을 내기 시작한다. 월동 벌을 돌보며 학수고대하던 봄꽃들이 피었으니 벌지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러나 이 봄꽃들이 전혀 기쁘지 않을 이들도 있다. 애지중지 키우던 수많은 벌들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몽땅 사라져 버린 양봉 농가들이다.

 

4월의 꽃 주인은 꿀벌

 

꿀벌의 대량 실종 사건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되었다. 그들은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봉군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라 불렀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종종 보고되긴 하였으나 그리 피해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겨울의 피해는 다르다. 한국양봉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전국양봉농가 18%에서 약39만 봉군(벌통)에서 벌들이 사라졌다. 전체 사육 봉군 227만군 중 17%이고 벌수를 추산하면 약58억 마리(봉군당 1.5만 마리로 계산)가 없어진 것이다. 주로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피해가 컸고 경기도나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말이 실종이지 모두 집을 나가 폐사한 것이다.

미국에서 15년 전에 발생한 이 사건 때문에 지구생태계와 인간의 삶에 미치는 벌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졌고 벌 되살리기 운동이 생겼으며 도시양봉 붐도 일어났다. 사실 나도 이 때문에 양봉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10여 년 전쯤 TED 토크라는 인터넷 프로그램에서 말라 스피박 교수의 “꿀벌은 왜 사라지는가”라는 강연을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은 후 도시양봉 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그리고 벌에 관한 책(벌,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을 번역 출판했고, 도시근교에서 벌을 키운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꿀벌 소실(실종)의 원인에 대해서는 위의 책에 상세하게 다루어져 있다. 주요 다섯 가지 원인은 기후 변화, 서식지 소실, 농업의 변화, 농약, 해충과 질병이다. 우리나라 농업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질병 문제를 가장 많이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보다 15년 늦게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이 시차에 우리가 간과한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써서 살충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 1962년이었고 우리나라에 농약문제가 등장한 것과 시간차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농약에 의존하는 농법이 일반화된 것이 미국보다 늦었기 때문이다. 양봉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나는 현재 우리나라에 일반화 된 양봉 방식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한국에서 꿀벌 실종을 야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봉 방식의 2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꿀벌 실종 원인 진단과 대응

첫째는 대규모 밀집 사육이다. 이번 꿀벌 실종 보도에 따르면 주로 대규모 양봉농가에서 피해가 나타났다. 700군을 사육하는데 50군 밖에 남지 않았다, 300군에서 2통밖에 안 남았다는 식이다. 따라서 대규모 사육 자체에 문제는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100~200군만 키워도 많다고 했었는데 이제 양봉 기술의 발달(?)로 700군, 1천군 키우는 농가들도 많아졌다. 15년 전의 미국과 상황이 비슷해졌을 수 있다.

양봉장에 가보면 많은 벌통들이 거의 간격도 없이 줄지어 놓여 있다. 관리상의 편의와 경제성 때문이다. 토종벌은 그렇게 밀집하면 도망가 버리지만 서양꿀벌은 적응력이 좋아 그대로 산다. 말이 사는 것이지 생존(서바이벌)하는 것이리라. 다른 가축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밀집 사육을 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병충해 문제다. 그것은 약으로 해결한다. 병충해가 두려우니 약을 기준치 이상으로 친다. 그래서 벌들이 약해진다. 약해진 벌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 토머스 실리 교수는 최근 저서 ‘꿀벌의 숲속살이’에서 대규모 밀집사육이 꿀벌의 질병에 특히 취약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야생 꿀벌들의 생존방식에서 새로운 양봉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꿀벌 실종을 조사한 농촌진흥청의 발표(축산경제신문, 2022/03/18)에서도 피해 농가의 봉군에서 대부분 꿀벌응애가 발견되었고 응애 박멸을 위해 쓴 약제가 기준치의 3배 이상 사용돼 월동 전 꿀벌의 발육에 나쁜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꿀벌응애는 꿀벌의 천적으로 꿀벌 애벌레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 먹을 뿐만 아니라 많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무서운 놈들이다. 꿀벌을 자연 상태처럼 흩어서 기를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밀집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응애 방제도 약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면역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친환경적인 방제기술을 늘려가야 한다.

둘째는 약탈적인 채밀이다. 밀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양봉가들은 말 그대로 싹쓸이 채밀을 한다. 벌들은 꽃꿀을 따오면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숙성하여 저장한다. 그런데 양봉가들은 그들이 먹어 없애는 것이 아까워 바로 따온 묽은 꿀을 고성능 채밀기로 빼내고 묽은 꿀은 인공시설로 자연 꿀과 비슷하게 농축한다. 식량을 빼앗긴 봉군에게는 대체식량(설탕물)을 주어 연명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 벌들은 영양 부족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양 결핍은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고 결국 질병과 폐사에 이른다.

 

 

밀원수를 심고 야생 꿀벌 채밀을 하자

기후변화는 이러한 과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우리나라 밀원의 70퍼센트 이상을 담당했던 아까시 나무는 5월의 화창한 날씨 덕에 꽃이 만발하고 많은 봉군들을 먹이고도 남는 꿀을 쏟아내었으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오월은 푸르구나’는 옛말이 되었다. 기후변화로 오월은 잦은 비와 불순한 날씨가 계속되어 최근 몇 년 동안 아까시 꿀이 나오지 않자 양봉농가는 채밀을 못하고 벌들은 영양 결핍에 빠지게 되었다. 이제 양봉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기적으로는 변화된 기후에 맞는 새로운 밀원수를 많이 심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꿀을 고급화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꿀은 원래가 고급 식품이었다. 벌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제공하며 자연 꿀을 충분이 먹도록 하여 건강하게 만들고 남는 양질의 꿀을 소량 채밀하여 비싸게 팔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벌들의 대량 실종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도 좋은 꿀을 먹어서 좋고 꿀의 소중함도 알게 될 것이다. 앞서 나는 세계의 비싼 꿀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뉴질랜드의 마누카 꿀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흔한 아까시꿀이나 밤꿀도 자연적으로 채밀하고 잘 숙성하면 고급꿀이 될 수 있다. 미국과 같은 대량생산 전략은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없다. 코스트코 같은 대형매장에 가보면 커다란 플라스틱 꿀병이 산더미처럼 쌓인 미국산 싼 꿀과 작은 병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마누카 꿀이 같이 진열되어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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