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요지, '벌을 괴롭히지 않으면 벌쏘임을 면하니라'
양봉요지, '벌을 괴롭히지 않으면 벌쏘임을 면하니라'
  • 김승윤기자
  • 승인 2022.01.21 0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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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걸근 신부와 양봉요지

 

 

 

1916년 다른 경로로 윤신영이라는 분이 서양꿀벌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1917년 “실험양봉”이라는 지침서를 간행했다는 기록도 있어 이즈음에 한국에서 근대 양봉이 시작된 것은 확실하다.
 

 

최초의 양봉교재, 구걸근의 '양봉요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1911년 2월. 성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독일인 수도사 4명이 일본 고베와 부산항을 거쳐 경성(서울)에 도착했다. 2년 전 1909년 2명의 수도사가 들어와 경성의 백동(혜화동)에 수도원을 설립한 뒤 2차로 수도사들이 들어온 것이다. 그 일행 중 한명의 이름이 카니시우스 퀴겔겐(P. Canisius Kügelgen, 1884~1964). 당시 나이는 27세였다. 나중에 이름을 한국식으로 구걸근(具傑根)이라 바꾼 이 수사(신부)에게는 하나의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양봉(養蜂) 기술이었다. 양봉은 수도원에 필수적인 밀랍과 꿀을 조달하기 위한 기술이기도 했지만 또한 당시에는 수익을 보장하는 첨단 농업기술이었을 것이다. 그는 1916년 일본을 통해 서양종 꿀벌을 들여와 기르면서 근대적인 양봉기술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1918년 “양봉요지(養蜂要誌)”라는 한글로 된 양봉교재를 펴냈다.

 

 

 

책자 양봉요지는 1918년에 등사형태로 150권이 출간되었으나 국내에서는 다 없어지고 독일 뮌스터 슈바르자흐 수도원에 딱 한 권이 남아 있었다. 2014년 왜관수도원 선교사로 파견된 바르톨로메오 헨네켄 신부가 독일 수도원에서 양봉요지의 존재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후, 경북 칠곡군과 왜관수도원의 주도로 양봉요지의 반환이 논의됐다. 양봉요지는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8년 1월 영구 임대 형식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칠곡군은 이 책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펴냈다.

양봉요지에는 경상도 지방의 방언들이 쓰이고 있어서 책이 출판된 시기(1918년)부터 구걸근 신부가 왜관에 이미 있던 가실성당에서 양봉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는데, 책은 경성에서 출판되었고 베네딕도 수도회가 왜관으로 내려간 것은 1952년이라서 무리한 추측인 것 같다. 구걸근 신부는 1920년대 이후 만주 쪽으로 가서 연길시 해성소학교 교장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고 1954년 독일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그가 뿌린 양봉의 씨앗은 이미 경성 시대 수도원의 수도자들에게 오롯이 전수되었을 것이고, 왜관으로 이전한 뒤 수도원을 통해 칠곡군 전역에 퍼지게 되었을 것이다.

양봉요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벌들의 생태와 습성에 관한 지식, 분봉법, 채밀법 등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책 처음에 나오는 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가르침은 양봉가나 일반인들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벌은 지각이 없는 고로 모든 행동은 자기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오 바깥 사정으로 인하여 하는 것이라. 그런즉 사람이 벌에게 쏘이는 것도 벌이 사람을 해코자 함에서 되는 것이 아니오 사람이 벌을 괴롭게 함으로 인하여 되는 것이니, 봉군을 관리할 때는 아무쪼록 벌을 괴롭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야 벌에게 불쾌한 감정이 나지 말게 할지라.”

 

 

 

양봉산업 중심지, 칠곡군 베네딕도 수도원

한국에 서양 학술을 소개하는데 힘썼던 베네딕도회는 일제의 눈 밖에 나서 1927년 함경도 덕원으로 본부를 옮겼고 1949년에는 공산당에 의해 수도원이 폐쇄되었다. 이어 수도회는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2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의 가실성당(1895년 건립된 아름다운 성당)에 의탁하여 수도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 왜관에 새로 수도원을 건립하여 오늘날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60년대에 분도 출판사를 설립하여 많은 혁신적인 서적을 보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분도 출판사의 ‘분도’는 베네딕도를 뜻한다. 원래 중국에서 베네딕도를 번두(本篤)라 부르던 것을 한국에서 다시 분도(芬道, 향기 나는 길)로 음역하였는데 그 뜻까지 고려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벌꿀축제와 꿀벌나라테마공원

칠곡군은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과의 인연 때문인지, 한국 양봉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국내 아까시 나무 최대 군락지가 있으며 매년 5월 벌꿀 축제가 열린다. 2016년에는 “꿀벌나라테마공원”도 건립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조선시대 일본인들의 교역을 위한 숙소인 왜관이 칠곡군에 있는 것일까? 사실 조선시대에 부산포 등 큰 도시에 왜관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후 낙동강의 물길을 따라 새로 작은 왜관들이 만들어졌었는데, 1904년 일본인들에 의해 건립된 경부선 철도가 칠곡군에 있는 왜관 옆을 지나게 되어 왜관역이 생겼고, 그 이름이 굳어져 전국에서 유일하게 왜관이라는 지명이 남아있게 되었다고 한다. 백제 태자가 일본에 꿀벌(재래종)을 전해주었는데, 천여 년 뒤 다른 꿀벌(서양종)이 일본에서 들어와 왜관이 있던 곳에 번성하게 되었으니 무슨 뜻이라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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