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의 단꿈, 피나무 꿀맛
겨울 나그네의 단꿈, 피나무 꿀맛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1.11.24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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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나그네의 단꿈과 피나무 꿀

 

 

 

 

 

낙엽이 막 우수수 지기 시작하여 아직은 겨울을 이야기할 때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조금 이르게 겨울 나그네의 단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에 “보리수”라는 곡이 있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

풍성한 그늘과 향기로운 꿀을 주는 귀한 피나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나무로, 득도를 하는 구원의 나무로

사랑받아 왔다

염주를 만드는 피나무 열매
염주를 만드는 피나무 열매

 

보리똥나무 열매
가을에 수확하는 보리똥나무 열매
6월에 수확하는 보리수 열매

 

 

피나무(린덴나무), 보리수, 보리똥나무 바로 알기

이 보리수는 독일어로 린덴바움(Lindenbaum). 바움이 나무이므로 린덴 나무이다. 그런데 벌과 꿀에 대한 책을 보다가, 이 린덴 나무가 유명한 밀원식물의 하나인 피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 황당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피나무가 보리수가 된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피나무 열매는 염주를 만들기에 좋고 부드러운 목재는 목탁을 만들기 좋아 특히 절에서 피나무를 보리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피나무는 이렇게 불교와 인연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심어 놓으면 웅장하게 자라 보기도 좋으니 한국에 자생하지 않는 인도의 보리수(부처님이 그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무)를 대신할 만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번역할 때 피나무보다 품위 있어 보이는 보리수로 옮겼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한편,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보리수는 시골에서 보리똥나무라고 부르며 잎사귀 뒤쪽이 은빛이고 빨갛게 익는 작은 열매를 맺어 새들이 많이 찾는 작은키나무이다. 이 보리수와 인도의 보리수, 그리고 피나무인 보리수, 이들 세 가지 보리수가 다 다른 것이다.

 

3대 밀원식물, 피나무의 꿀맛은 단연 으뜸

여하튼 린덴나무는 한국의 피나무와 친척이고 밀원식물이다. 한국에서 피나무는 강원도 오대산 등지에 자생하는데, 아까시 나무보다 꿀이 더 많이 나오는 유명한 밀원식물이다. 아까시, 밤나무에 이어 한국의 3대 밀원이라고 할 만한데, 나오는 지역이 한정되다보니 그 꿀이 귀하기 그지없다. 산을 사랑하여 오대산 근처에 터를 마련했다가 주위에 피나무가 많아 양봉까지 하게 된 친구 덕에 피나무 꿀의 고급스런 맛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피나무 꽃이 해거리를 하는 데다 기후변화로 냉해를 자주 입어 꿀 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한다. 더욱 귀해진 피나무 꿀은 황금피나무꿀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벌들이 그 진가를 아는 피나무꽃,  6월에 핀다

 

직장에 다닐 때 우연치 않게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한겨울이었다. 베를린 거리를 함께 걸었던 루마니아 참가자가 거리의 가로수가 린덴 나무라고 알려주었다. 낙엽마저 사라진 앙상한 나무였고 모양도 생소하였지만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와 보리수의 꿈을 생각했었다. 그때 내가 린덴의 정체를 알았더라면, 그리고 그 꿀맛을 알았더라면, 겨울 나그네의 단꿈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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