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눈에 꽃힌 돼지감자꽃
늦가을에 눈에 꽃힌 돼지감자꽃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1.10.16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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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돼지감자꽃이 피었습니다

 

 

 

꽃가루도 덤, 뿌리도 알짜

올해도 돼지감자꽃이 피었다. 삼년 전 농장에 처음 왔을 때 풀들이 너무 많아 이들을 이기면서도 쓸모 있을 식물로 돼지감자를 선택하였다. 마침 동네 어느 할머니 노점에 나온 돼지감자 뿌리를 사서 여기저기 심었는데, 이제는 농장에서 한자리 하는 몸이 되었다. 구월부터 피기 시작한 노란 꽃이 한창이다. 루드베키아 같기도 하고 키 큰 놈들은 해바라기 같기도 하다. 꽃을 보기 위해 심는 식물은 아니지만 이제 가을마다 제법 보기 좋은 꽃을 피우고 벌들에게 꽃가루 식량도 제공하니 제법 쓸 만하다. 늦가을이나 초봄에 뿌리 덩이들을 함빡 캐어내면 쓸모를 떠나서 일단 흐뭇하다. 올해도 핀 이 꽃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노란 유혹 돼지감자꽃, 늦가을 농장의 쓸쓸함을 달래준다

 

 

 꽃피는 농장 그리다

우선 어릴 적 좋아했던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동요가 생각난다. 이 노래를 부르면 자연스레 꽃밭이 있는 집이 떠오르는데, 나는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 아름다운 꽃이 피는 집, 내가 꽃을 가꾸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나의 손길과 상관없이 꽃들이 피고, 내가 가꾸는 농장에는 돼지감자꽃, 고추꽃 같은 농작물 꽃, 민들레꽃, 제비꽃, 망초꽃 같은 야생화들이 주로 핀다. 손톱에 봉숭아꽃물 들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해마다 농장 한 구석에 봉숭아 씨를 뿌리기는 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꽃만 보기 위한 꽃밭은 없다. 허브 몇 종류를 심기 위해 화단 비슷한 것을 아주 작게 만들어 보았는데 거의 풀숲에 덮여 버리곤 한다. 노래에 나오는 과꽃은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서 대개 자줏빛이라고 하는데 사실 한 번도 실물을 보지 못하였다. 가을에 피는 이 꽃도 한번 심어보고 싶기는 하다. 작년에는 산국과 참나리를 옮겨 심었더니 산국은 그해에 참나리는 올해서야 꽃이 피었다. 올해는 달맞이꽃과 꽃향유가 한두 개 새로 피었는데, 인근 야산에서 씨를 훑어와 뿌린 덕인 것 같다. 몇 뿌리 캐다 심은 구절초도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린다. 올해도 피는 꽃들, 그리고 올해에 새롭게 피는 꽃들! 벌식구가 늘면서 꽃식구도 늘어나는 것인가.

 

청아하게 빛나는 달맞이꽃
청아하게 빛나는 달맞이꽃

 

 

살아있다는 기쁨에 모기와도 친구하나

과꽃도, 국화꽃도 아니지만, 돼지감자꽃이 ‘올해도’ 나의 농장에 핀 것은 내가 기른 공만이 아니다. 온 생태계가 돕지 않으면 피지 않는다. 꽃이 피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이고, 인간이 꽃을 좋아하는 것도 불가사의다. 일본의 하이쿠(한 줄짜리 짧은 시) 시인인 이싸(一茶)는 매년 모기에 물리는 것조차 행운이라 했는데, 소담스럽게 핀 꽃을 해마다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류시화의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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