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라는 전투에서 이기는 여유, 나누며 살자
농사라는 전투에서 이기는 여유, 나누며 살자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1.09.16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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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전선의 전투병

                                                          

 

 

 

꿀벌동산에 가을이 왔다. 코스모스 꽃 사이로 보이는 양봉장과 마지막 꽃가루를 모아 오는 꿀벌들의 모습은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가을은 전투의 계절이다. 양봉장의 가을을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은 말벌의 출현이다. 설치해둔 포획기에 걸려든 말벌들이 정말 버글버글하다. 커다랗고 시커먼 것이 벌통 앞을 종횡무진 날며 꿀벌을 잽싸게 포획하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놈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드론 공격과 같다. 이런 놈들은 포충망으로 직접 잡아야 하는데, 수고로움보다는 살생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 포획기에 걸려든 놈들을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 나름 아름답게 생긴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이들은 적의 공수부대이다.

 

포획기에 걸려든 말벌, 인간의 지능이 과연 우수하다!
포획기에 걸려든 말벌, 살생보다 일종의 회피전략을 나는 선택한다

 

벌을 많이 잡아먹어 배가 불룩한 여치나, 사마귀, 두꺼비들은 적의 지상군이다. 제일 웬수 같은 놈은 벌집 안에서 벌들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꿀벌응애라는 진드기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이놈들은 일억년전의 벌 화석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하니 정말 철천지원수이다. 가을은 이놈들을 방제하는 시기이다. 방제하는데 실패하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봉군이 붕괴한다. 이들은 적의 생물학 무기인가.

벌통 옆 텃밭에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배추를 길러보겠다고 모종을 심은 후 방충망까지 씌웠다. 그리고 잘못될 것을 감안하여 모종을 60여개나 심었는데, 다음날 가보니 땅속에 뭐가 있는지 모종들을 거의 절반이나 잘라서 작살내 놓았다. 적의 땅굴부대에 당한 것이다. 짝짓기를 하는 섬서구메뚜기 등 배추의 여린 잎을 노리는 벌레들이 지천이다.

 

배추모종의 초토화!

방충망의 존재 가치를 무력하게 만든 땅속벌레들이 있을 줄이랴?

 

 

나의 꿀벌동산은 바로 산과 접해 있어 유난히 벌레와 생물들이 많다. 고라니(노루) 망을 치지 않으면 농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작년에 울타리 밖의 땅을 개간하여 고구마를 심었더니 고구마순을 고스란히 이들의 밥으로 내줬고 고구마는 캐지도 못했다. 산에는 풀과 식물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농작물만 노리는가. 사람이 먹으려고 기르는 것은 무엇이나 동물들이 먹기에는 더 좋은 것인 모양이다.

 

'살생은 농가지상사' 에서 나눔과 공생으로 패러다임 전환

사실 이 모든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결국 먹이 전쟁으로 귀결된다. 사람과 다른 생물종들과의 먹이 전쟁이다. 인간의 먹이를 생산하는 농부는 한편 다른 생물종들로부터 인간의 먹이를 방어하는 전투병이기도 하다. 나처럼 야생의 산과 접해 있는 농장은 그야말로 이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울타리를 치거나 내쫓거나 살생을 하지 않으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벌레들을 잡다가 문득 “살생은 농가지상사(農家之常事)”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승패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인 것처럼.

 

농약이라는 신무기를 버리는 인내

그런데 이 전쟁에서 쉽게 이기려면 농약이라는 신무기를 쓰면 된다. 물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재 우리가 기르는 농작물 종들은 농약을 쓰지 않으면 기를 수 없도록 현대인들(종자 회사)이 만든 것이다. 인간이 먹기 좋게 육종을 하다 보니 야생의 환경에 너무 취약하고 반면 야생 생물들의 밥이 되기에 너무 좋게 되어 버렸다. 산업사회 이전에, 농약을 쓰기 전에는, 가령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농작물 종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수확량도 적었을 터이고.

가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산속에 홀로 살며 텃밭을 일구는 모습이 멋져 보이는데, 과연 그들이 농약을 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요즈음 종자로는 어려울 것이다. 고구마처럼 울타리만 치면 잘 자라는 작물 외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벌을 키우면서 친환경적인 방제를 하고 텃밭도 농약을 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되지 않는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생물들과 나누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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