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 아는 밤나무, 꿀맛도 으뜸
근본을 아는 밤나무, 꿀맛도 으뜸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1.06.23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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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오케스트라

 

                                                         

 

 

 

요즈음 주위의 산야에는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구미호 꼬리 같기도 한 밤꽃 수꽃이 슬슬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수꽃이 져 갈 때 작은 밤송이 마냥 생긴 암꽃이 피고 거기에서 꿀이 나온다. 진한 밤꽃 냄새는 역한 듯하지만 또 계속 맡다보면 뭔가 고소하다는 느낌도 든다. 벌통 앞에서 밤꽃 향이 돈 지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밤 꿀은 별로 모이지 않고 있다. 꿀벌들은 먼저 수꽃에서 꽃가루부터 챙겨 오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틀 전에 벌통 서너 개에 밤 꿀이 조금 차서 일단 시험 채밀했다.

 

 

풍성한 밤꽃, 꿀량은 반비례
풍성한 밤꽃, 꿀량은 반비례
채밀활동중인 꿀벌 모습
꽃가루 옮기기에 바쁜 꿀벌들

 

익히 알고 있는 밤 꿀을 채밀하면서 하얀 밤꽃에서 어떻게 밤 껍질의 밤색 꿀이 나오는지 다시 신기하기만 하다. 진한 갈색, 아니 밤색의 꿀은 진한 향과 함께 쌉싸래하면서도 달고 고소한 복잡한 맛이 난다. 한마디로 밤 꿀은 정체성이 뚜렷하다.

조상님 제사상에 밤을 반드시 올리는 것은 바로 뚜렷한 밤의 정체성 때문이다. 알밤을 심으면 싹이 나오는데 알밤 껍질이 뿌리 부분에 붙은 채로-길게는 100년까지-자란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근본을 잊지 않은 이러한 밤의 품성을 본받고자 제사상에 올렸다고 한다. 물론 밭둑에 몇 그루 심어 놓으면 절로 자라 매년 수많은 밤송이가 열리고 영양가 풍부한 보조 양식이 되니 그 귀함이 남달랐을 것이다. 또 그렇게 많이 열리니 다산의 상징이 되어 결혼식 폐백 때 신부에게 던지는 것도 밤이다.

 

한국 밤꿀의 영양은 매우 뛰어나, 고가로 세계시장에 팔릴 듯

그런데 알밤만 귀한 것이 아니고 밤 꿀도 귀하다. 확실한 밤색에 강렬한 향과 한약 같은 쌉싸래한 맛을 지녀서 약꿀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영양 성분을 분석해 보아도 다른 꿀보다 탁월하다고 한다. 과당과 포도당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칼륨, 칼슘, 마그네슘, 비타민C 등 이 풍부하여 인체에 여러 가지 좋은 작용을 한다. 또한 쌉싸래한 맛은 소화기 계통에 약효가 있고, 밤 꿀에 함유된 페놀산과 플라보노이드 등 기능성 물질은 상처치유, 항균, 항암 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밤 꿀은 고가로 팔리는 뉴질랜드 마누카 꿀보다도 더 많은 페놀산과 플라보노이드 성분을 가지고 있을 만큼 우수하다고 한다.

마을이나 도로 주변의 야산에 밤나무가 많은 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다 사람들이 심은 것이다. 민둥산 녹화를 위해 아카시 나무를 심은 것과는 다른 이유로, 식량과 상징적 의미를 위해 조상들이 심은 것들이다. 이맘때 온산에 밤꽃이 피는 멋진 경관은 자연경관이라기보다 인문경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밤 꿀을 먹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부터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 서양꿀벌이 처음 들어온 것은 고종황제 때 독일인 선교사 구걸근(Kögelgen)신부에 의한 것인데, 오래 전부터 있었던 한국의 토종벌로는 밀원을 선택해서 꿀을 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새싹 밤나무
어린 새싹 밤나무

 

 

사라지는 아카시나무 대신 밤나무 심기 운동 시작하자 

밤 꽃 향에 취하려 산에 가지 않아도 밤 꿀 한 스푼이면 깐깐하고 개성이 뚜렷한 밤의 오케스트라를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밤 꿀은 맛이 너무 강해 벌들도 꺼리고 많이 분비되지 도 않아 아카시 꿀처럼 풍성함이 없다. 또 수분이 많아 숙성하기도 쉽지 않다. 밤 꿀이라도 좀 따면 기후변화 때문에 점점 어려워지는 아카시 꿀을 대신하여 벌지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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