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물밑을 볼 줄 알아야 인생과 자연을 안다
'춘래불사춘', 물밑을 볼 줄 알아야 인생과 자연을 안다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1.02.03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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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이 봄 같지 않은 까닭

 

             우리 시대 지식인 농부, 철학자 김승윤을 알다

 

입춘날에 다시 생각하는 '立'의 의미

입춘(立春) 날(2월3일) 공교롭게도 눈이 많이 내렸다. 입춘부터 봄이라는데 왜 이리 추운가. 기후변화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본래 입춘은 추운 것이다. 입춘을 두고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고 한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 꽃눈이 자라고 있다

 

 

사계절 24절기의 전체 구조와 흐름을 알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365일간의 긴 여정을 4등분한 것이다. 봄이라는 한 조각은 입춘에서 입하까지 약 90일의 기간이고 24절기 중 6개를 거치는 상당히 긴 여정이다. 이 여정은 하루도 그냥 머물지 않기 때문에 90일 모두를 봄이라 부르지만 사실 하나도 같은 날이 없다. 24절기는 이 계절 변화의 흐름을 특히 농부들의 입장에서 좀 더 명확하게 읽기 위해서 고안해 낸 것이다(안철환,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참조).

 

 

 

 

보이는게 '다'가 아니야, 지식인 농부의 눈

입(立)절기인 입춘은 겨울의 끝이자 봄의 시작이므로 봄기운을 느끼기 어렵지만, 교(交)절기인 우수(雨水), 경칩(驚蟄)이 되면 봄기운을 점점 더 느낄 수 있고, 기(基)절기인 춘분에는 누구나 봄이 왔음을 안다. 춘분이 되면 산수유, 진달래, 생강나무 등 이른 봄꽃이 피지만 아직은 춥고 땅도 다 녹지 않는다. 극(極)절기인 청명(淸明, 4월4일)과 곡우(穀雨, 4월20일)가 되어야 온갖 봄꽃이 다 피고 본격적인 농사철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 벌써 봄을 여읜 슬픔에 잠기게 된다. 5월 5일경 입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4절기는 사계절이 모두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여름의 입절기는 입하, 교절기는 소만(小滿), 망종(芒種), 기절기는 하지, 극절기는 소서, 대서이다. 가을의 입절기는 입추, 교절기는 처서(處暑), 백로(白露), 기절기는 추분, 극절기는 한로(寒露), 상강(霜降)이고, 겨울의 입절기는 입동, 교절기는 소설, 대설, 기절기는 동지, 극절기는 소한, 대한이다. 이 구조를 알면 24절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계절 24절기 중 오직 극절기의 현상만을 기억한다. 백화가 만발하는 청명 곡우의 봄, 삼복더위가 있는 소서 대서의 여름, 낙엽 지는 한로 상강의 가을, 뼈가 시리도록 추운 소한 대한의 겨울을 생각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농부는 입절기만 되어도 계절의 변화를 읽고 농사를 준비한다.

 

물밑이 더 긴 인생, 자연의 이치와 같아

이제 입춘이 지났지만 춘분까지 아직도 약 45일의 기간이 남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아주 조금씩 봄을 발견하고 맛들일 수 있다. 입춘에 내린 눈이 벚나무 가지에 소복이 쌓였지만  겨우내 형성된 꽃눈이 날로 살져가고 있다. 이 하얀 벚나무 가지는 최근에 골절상을 입어 깁스를 한 내 팔뚝 같기도 하다.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에 새소리가 경쾌해 진 듯하다. 들판의 봄나물은 뿌리가 실해지고 있을 것이며, 잘하면 곧 연못에 도룡뇽 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지난다고 짠하고 봄이 오는 것이 아니다. 물밑작업이 끝나야 된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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