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리베치, 또 하나의 실험
헤어리베치, 또 하나의 실험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0.11.03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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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꽃씨를 뿌리다

 

 

 

 

  그동안 묵정밭으로 두었던 부분에 꽃씨를 뿌리기로 했다. 개망초가 주인노릇 했던 부분인데, 꿀도 나오고 보기에도 좋은 꽃을 심어보려는 것이다. 그리 넓지 않은 밭에 심은 꽃에서 얼마나 꿀이 나올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여보려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렷다!

 

헤어리베치 실험

 하나의 실험이기도 하다. 남도가 고향인 내게 유채나 자운영 꽃이 먼저 떠올랐으나 이들은 중부지방에서 못 자란다 하기에 추위에 강한 헤어리베치 꽃을 택했다. 헤어리베치는 지중해 동부 등지가 원산인 콩과의 넝쿨식물이며 녹비작물로 쓰이는데, 5~6월경 보라색 꽃이 함빡 피고 꿀도 많다고 한다. 작년에 시험 삼아 뿌려보았는데 꽃도 볼만하고 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작년에 핀 꽃

헤어리베치

 

아직도 농장 군데군데 그 푸른 넝쿨들이 보이는데 그대로 생생하게 겨울을 날 것이다. 어찌 보면 무서운 식물이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견디다가 봄이 되면 다른 풀보다 일찍부터 자란다. 한 번 자리 잡으면 다른 풀이 들어오지 못하고 씨가 떨어져 계속 번식한다. 나처럼 게으른 농부에겐 최고의 작물이다.

 

 농부란 생태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존재

  그러나 땅을 갈지 않고는 번식시킬 수 없어 이번에 큰 맘 먹고 트랙터를 동원하여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이때 나는 산에 불을 놓아 기존 식물들을 없애고 씨를 뿌려 농사를 지었던 화전민들의 마음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기존 식물들의 저항은 강하다. 트랙터가 들어오기 전에 그곳에 남아 있는 줄거리들을 제거하기 위해 낫질과 예초기 작업을 쥐가 나도록 했으니 말이다. 농부란 생태계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존재이다. 거기에 인간의 노동이 있다. 

 

      

씨앗을 뿌리다

 

 

  씨를 뿌린지 약 열흘째. 밭을 자세히 살펴보니 벌써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겨울에도 싱싱하게 자랄 이놈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신기하다. 보라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 내년 오월이 기다려진다. 헤어리베치 꿀은 또 어떤 맛일까.

 

싹이 올라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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