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준비에 바쁜 동물과 농부들의 가을풍경
겨울준비에 바쁜 동물과 농부들의 가을풍경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0.10.07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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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오고 있다

 

                                                                                             김승윤

 

 

 

겨울이 오고 있다
Winter is coming! ‘왕좌의 게임’이라는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여 유명해진 구절이다. 작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그 의미가 퇴색해버린 농경시대의 언어를 소환하여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냉혹한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경구로서 이 말을 사용했던 것 같다. 벌을 키우고 텃밭을 가꾸면서 이 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들은 개념으로서 이 말을 사용하지만 수십만 년 생존해온 생물들에게는 이 말이 유전자에 각인된 하나의 정보이자 지상명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농부가 8월의 땡볕이 끝나기 전에 배추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리는 것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야들야들한 배추와 무 잎을 갉아먹고 짝짓기를 하고 있는 섬서구메뚜기도 사실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사마귀
 짝짓기를 하는 섬서구메뚜기

 

벌통 주위에 슬금슬금 나타나서 아까운 벌들을 잡아먹는 사마귀나 억센 턱으로 꿀벌 수백 마리를 살육하는 장수말벌도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벌들을 잡아먹는 사마귀
벌 잡아먹는 사마귀

 

 

말벌에게 가을은 다음세대 여왕벌을 양성하는 번식기이다. 가을에 태어난 어린 여왕벌은 바위 틈, 나무 구멍 등에서 혼자 겨울을 나고 봄에 깨어나 알을 낳고 새로운 말벌 군락을 개척한다. 그래서 봄에 날아다니는 말벌은 모두 여왕벌이고 한 마리를 잡으면 수백 마리의 말벌 군집을 잡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극성스럽게 꿀벌들을 공격하는 말벌들에게는 꿀벌들이 겨울을 날 다음세대 애벌레에 공급할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들의 유전자에 ‘겨울이 오고 있다’는 정보가 새겨져 있고 날씨를 감지하여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그들은 겨울에 살아남지 못한다. 짝짓기를 하는 섬서구메뚜기나 사마귀도 알을 낳아서 월동을 시키고 자신들은 생을 마감한다. 농부는 이들로부터 자신의 먹이를 지키기 위해 배추에는 망을 씌우고(대개는 농약을 친다), 양봉장에는 말벌 포획기를 설치하여 말벌들을 잡고 아까운 말벌들을 활용하기 위해 말벌주를 담근다.

 

말벌포획기
말벌포획기

 

 

한계절 먼저 가야 진정한 농부다

꿀벌지기들에게 가을은 봄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그들은 여름벌들이 가을에 태어날 벌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먹이를 공급하고 보온에 신경 쓴다. 또한 진드기와 말벌 등 온갖 해충과 질병들로부터 보호하고, 겨울을 날 벌들이 먹을 식량을 저장하게 한다. 가을에 태어나는 벌들은 둥지 안에서 뭉쳐 저장된 꿀을 먹으며 엄혹한 겨울을 나고 내년 봄에 새로 꿀을 따올 봄벌들을 키울 것이다. 그들은 항상 한 계절씩 먼저 가야한다. 농경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살았다. 24절기를 보면 입추는 더위 속에서 가을을, 입춘은 추위 속에서 봄을 읽는 절기인 것이다. 농사에서 멀어지면서 우리의 계절 감각도 무뎌져 있다. 생물들의 행동 속에 답이 있다.

 

월동식량이 되는 가을꽃

양봉가들은 들깨 꽃이 피면 벌들에게 월동식량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요즈음 벌들은 가을꽃에서 마지막 꽃가루를 따고 있다. 메리골드, 코스모스, 돼지감자, 국화 꽃은 그들의 마지막 밥이다.

 

메리골드 꽃가루 따는 벌
메리골드 꽃가루 따는 벌
가을하늘 아래 팔랑이며 꿀벌의 놀이터가 된 돼지감자꽃
가을하늘 아래 팔랑이며 꿀벌의 놀이터가 된 돼지감자꽃

 

 

꿀벌지기는 이 가을에 겨울을 넘어 봄까지 생각한다. 홍천에 터를 마련하고 나보다 먼저 벌농사를 시작한 K형은 제때에 필요한 행동을 하기 위해 항상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되새긴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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