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기울여야 따는구나
아하! 기울여야 따는구나
  • 김승윤 기자
  • 승인 2020.08.1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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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의 상념들

 

 

 

 

금년은 유달리 장마가 길다. 비도 자주 오고 일기예보는 전혀 맞지 않는다.

 

 

고해와 고통속에 번민하는 농부


빗속의 농장은 농부들에게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와도 같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작물들이 자라지 않고 지나친 비에 피해를 보는 것이 고통이요, 내가 바라지 않는 잡초와 해충들은 누가 심지도 기르지도 않는데도 너무나 잘 자라 원수처럼 내 작물들을 망치는 것이 고통이다. 벌 농사도 마찬가지이다. 비 때문에 꿀 따기도 포기했는데, 설상가상 온갖 질병들이 벌들을 위협한다. 석가모니의 인생팔고(人生八苦) 중에서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와 원증회고(怨憎會苦,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가 여기에 딱 맞는다. ...

옥수수 풀밭에서 인생의 의미를 느끼다

 

벌레도 인간도 동등한 자연, 자연순환과 상생이 농업의 진정한 가치

그러나 과연 농사일은 고통뿐인 것일까? 초짜 농부의 조급증과 탐욕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콩 세알을 심는 이유가 한 알은 새가 먹도록 두고, 다른 한 알은 벌레에게 주고, 나머지 한 알에서 나온 수확을 내가 얻기 위함이라는 이야기의 뜻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빗속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먹을 걸 벌레가 먹었으니... 나눠 먹지뭐!
벌레야 너도 좀 먹어야지, ㅎㅎ

 

기쁨을 느낄때, 아하! 고개를 기울여야 따는구나

올해는 옥수수를 두 군데 심었다. 내 텃밭과 내가 속한 도시농업 공동체의 텃밭에도 심었다. 공동체 텃밭에 심은 옥수수는 벌써 수확을 마쳤고 내가 따로 심은 옥수수는 지금 수확 중이다. 공동체 텃밭에 심은 옥수수는 조명나방 애벌레 피해를 입어 말 그대로 삼분의 일을 벌레들에게 바치고 나머지를 수확했다. 이웃 진짜 농부들에게 벌레 먹은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 밭도 먹었어요’ 하고 웃는다. 당연지사라는 듯이. 수확 일자를 잡으려고 샘플을 채취하고 있는데, 새로운 팁을 알려준다. 보통은 옥수수 수염이 고스러지면 옥수수가 익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옥수수가 알이 차서 무거워지면 옥수수 열매가 옆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수염이 고스러지고 튼실한 열매가 비스듬히 기울어질 때 따자!

 

빠빳한 대 ㆍ옹골찬 수염, 때를 기다려라

 

생명과 노동의 신비가 알알이 박히다

 

그렇게 수확한 옥수수의 여린 열매를 삶아서 야들야들한 알을 갉아먹으며 장맛비 속에서 오랜만에 기쁨을 누린다. 내가 텃밭에 옥수수 씨앗을 심은 것이 4월 25일이었는데, 겨우 석 달 조금 지나서 내 키보다도 더 커진 옥수수 나무(풀이겠지)에서 열매를 수확하고 있으니 그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초짜 농부의 조급증에서 벗어나 생명과 노동의 신비에 다가서면 기쁨의 비율이 더 커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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