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해가 다가고말아'가 주는 의미
'내한해가 다가고말아'가 주는 의미
  • 김승윤
  • 승인 2020.05.01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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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디 귀한 도토리나무꽃, 배추꽃

     

 

 

                                               

 

남도의 영랑 생가에는 벌써 모란이 피었다고 한다. 친구 남해거사가 매년 전해오는 꽃소식이다.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가장 애틋한 구절은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는 부분이다.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벌 키우고 텃밭 가꾸며 이 구절의 의미를 다시 알아가고 있다.
산 벚꽃이 피었지만 비와 찬바람 때문에 꿀은 거의 따지 못하고, 벚꿀에 관한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았다.

벚꿀은 포기하고 요즈음 벌통에 채분기를 설치하여 도토리 화분을 받고 있다. 도토리 나무(참나무)들이 이미 온 산을 연두 빛으로 색칠하고 있지만 화분이 그리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얼마 전 꽃샘추위 때문이다. 며칠 지나면 이 또한 한 해가 갈 것이다.

 

 

귀하디 귀한 도토리나무꽃
귀하디 귀한 도토리나무꽃

 

 

채분기
채분기

 

 

 


아카시나무 잎들이 이제 돋고 있는데 양봉인들은 오로지 그들이 꽃피울 때에 맞추어 벌들을 키우고 있다. 5월 10일경 필 것으로 내다보고 모든 준비를 한다. 전문 양봉인들이 봄벌을 강군으로 육성하여 아카시 꿀 채밀군을 편성하는 일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한해 꿀 생산량의 70퍼센트 이상이 아카시 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해도 아카시 꽃이 필 때 비가 내리면 끝이다.

실제로 재작년에는 하필이면 그 때 비가 내려 꿀도 보지 못하고 그냥 한 해가 넘어갔다. 물론 풍밀의 한해가 될 수도 있고, 그 경우는 좀 더 풍성한 마음으로 한해가 갈 것이다. 벌을 키우며 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양봉은 하늘의 조화에 달려 있다. 꽃이 피는 딱 며칠간만 허여되는 농사...

그러나 시인처럼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지 말고, 다시 삼백 예순 날 풍밀을 꿈꾸며 기다리며 살자. 비록 많은 기간이 주어지진 않을지라도 우리네 인생에서 한 해가 반복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궂은 날씨에 도시농부의 마음이 우울한데 이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풀린다. 작년 가을 배추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납작하게 봄동으로 지내다가 이렇게나 컸다. 꽃대가 올라올 때 한번 보여드린 놈이다. 배추의 진면목이 이렇게 영화로운 것이었는가. 우리가 먹는 배추의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 씨가 여물 때까지 잘 살아야 할 터인데. 얼마전 심은 상추 모종을 고라니란 놈이 작살낸 것을 보면 세상에는 무수한 위협들이 있다. 노란 배추꽃과 거기에 깃드는 나의 벌들이 귀하고 아름답다.

 

배추나무꽃
배추꽃, 그 화려한 변신
봄동의 일생, 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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