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염했던 철쭉꽃도 지고
오월의 흰 꽃들이 핀다.
오랫만에 보는 쪽동백꽃,
사촌인 때죽나무 꽃 향기를 그립게 한다.
아카시 꽃은 바야흐로 버선에서 팝콘으로 바뀌고 ...
찔레 향도 정겹다.
오월의 대세는 흰색인가
화란춘성(花爛春盛)~
자주 다니는 산책길 옆에는 아카시 나무 군락이 있다. 그들에게서 버선코같이 하얀 꽃잎이 나오다가 이제 팝콘처럼 터져 수천 송이로 바람에 흔들린다. 그러나 잦은 비와 저온현상 때문에 개화한 꽃도 예년보다 적고 꿀샘이 열리지 않아 벌지기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숲속에 들어갔다가 오랜만에 흰 쪽동백 꽃과 마주쳤다. 언젠가 청계산에서 한 무더기 떨어져 누운 흰 꽃잎들을 처음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말로만 듣던 쪽동백이었다. 동백처럼 기름을 짤 수 있어서 쪽동백(작은 동백)이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쪽동백은 때죽나무과에 속하고 꽃의 생김도 닮았다.
때죽나무는 쪽동백과 비슷한 꽃을 피우지만 향기가 너무 좋다. 그리고 벌을 키우면서 때죽나무 꿀도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명동 유네스코에 다니던 시절, 옥상정원에 때죽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매년 오월이면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고 향기가 진동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잎들은 바닥에 누워 작별을 고했다. 그 꽃들은 여전히 피고 있겠지...
오규원의 <고요>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때죽꽃 향기를 상상하며 문득 오월에는 흰 꽃들이 정말 많이 피고, 그들이 오월의 진정한 친구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래... 아카시 꽃, 쪽동백 꽃, 때죽나무 꽃, 산딸나무 꽃, 층층나무 꽃, 나무 수국 꽃, 찔레 꽃, 국수나무 꽃, 이팝나무 꽃, 그리고 마로니에 꽃까지 수도 없이 많다.
사람들이 농염한 빛깔의 철쭉들을 지나치게 많이 심어 놓아 4월 한 달 동안 눈이 지쳐 있었는데, 계절의 여왕은 소박하고 청초한 흰 옷을 입고 등장하는구나. 노랫말들도 귓가에 흐른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정태춘의 <5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