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속의 생산혁명, 뚱딴지 이야기
살얼음속의 생산혁명, 뚱딴지 이야기
  • 김승윤 기자
  • 승인 2019.12.25 0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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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딴지 캐다

 

 

 

 

                                                        

 

 

 

 

 

봄에 심었던 뚱딴지(돼지감자)를 한번 캐 보았다.

 

 

 

마른 줄기 하나를 살짝 잡아당기자 돼지감자 덩이들이 함께 올라온다. 땅표면에 살얼음이 돌지만 아직 땅속은 얼지 않아서 쉽게 뽑힌다. 수북한 덩이들을 보며 "한 알 심은 곳에서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인류 최초의 농부가 종자를 뿌려 수확하면서 느꼈을 경탄을 공유하는 순간이다. 2천년전에 쓰인 성경에도 한 알의 씨를 뿌려 백 배, 예순배, 서른 배를 낸다는 말이 있으니 농사라는게 생각보다 엄청난 생산혁명이었을 것 같다. 그러니 나중에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 토지의 사유화가 일어났을 법도 하다. 돈이 되면 가만놔두지 않는 것이 안좋은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어쨌든 이 돼지감자의 다른 이름이 뚱딴지이다. 생긴것이 뚱뚱해서라고도 하고 예상치 않는 곳에 덩이뿌리(실제로는 덩이 줄기라고 한다, 즉 괴경)가 박혀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도 한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17세기쯤 한국에 들어온 ...귀화식물로 추측되는데, 돼지감자는 먹어도 영양가가 별로 없어서 돼지에게나 먹이는 식물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당뇨병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인기가 좋다. 천연 인슐린이라고 과장되기도 했지만, 실은 돼지감자에 많이 포함된 이눌린이라는 다당류가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당뇨에 이롭다는 것이다. 이 이눌린은 우엉에도 많이 들어 있고 결국 사람에게 직접 에너지를 주는 당분과 달리 영양가가 적어서 좋다는 역설이 된 것이다. 돼지에게나 먹이던 것이 사람에게 이로운 귀한 식물이 된 것이다.

내가 이놈들 씨를 동네 아주머니 노점에서 한 자루(200여개) 구해 봄에 심은 것은 이들이 온갖 잡초를 이기고 자라며 가만이 놔두어도 계속 번지고 또 예쁜 꽃도 피어 벌들에게도 식량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자라서 꽃까지 피워주었다.

 

군락으로 피면 매우 아름다운 돼지감자꽃
군락으로 피면 매우 아름다운 돼지감자꽃

 

 

다만 어떤 것들은 흰가루병이라는 천적의 공격을 받아 기세가 좋지 않았다. 이 불굴의 영혼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놈들도 있었던 것이다.

 

 

 

돼지감자 덩이들을 슬라이스로 잘라 볶아서 차로 먹으면 좋다고 하지만 귀찮은 일이고 한꺼번에 수확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땅이 꽁꽁 얼기 전이나 봄에 땅이 녹기 시작할 때에 몇뿌리 뽑아서 생으로 썰어 우아하게 샐러드로 먹어보려 한다. 할머니라고 불러도 좋을 동네 노점 아주머니의 상당히 고급스러운 팁이다. 이분은 동네 서민 아파트의 느티나무 밑에 한 자리를 잡으시고 어디서인지 근처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들을 조금씩 파시는 분이다. 항상 당당하고 즐거운 표정이어서 그런지 단속반원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듯하다. 진정한 도시농부이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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